남방의 농촌에는 이런 풍경도 있다.
용희 는 그늘 짙은 (容姬) 뒷마루에 바느질을 차리고 앉아 자지러지게 골몰해서 있다.
샛노란 북포로 아버지의 적삼을 커다랗게 짓고 있는 것이다. 날베가 되어서 여기 말로 하면, 빛은 꾀꼬리같이 고와도 동리가 시끄럽게 버석거린다. 급한 바느질이다. 그러나 거진 다 되어간다. 고의는 벌써 해서 옆에다 개켜놓았고 적삼도 시방 깃을 다는 참이다. 그래도 용희의 손은 바쁘게 놀고 있다.
고운 손결이다. 방아도 찧고 부엌에서 진일도 하지만 마디도 불거지지 아니한 몽실몽실한 손가락들이 끝이 쪽쪽 빠졌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소설가. 전북 옥구 출생. 호는 백릉(白菱). 서울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수학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개벽>사의 기자를 역임했다. 그는 1924년 12월호 <조선문단>에 단편 “세길로”로 추천을 받고 등단. 그러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에 접어 들어 <조선지광>, <조광>, <신동아> 등에 단편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1932년부터는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작품 경향으로 한때 그는 동반자 작가로 불린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동반자적 입장에서 창작하였으나 후기에는 풍자적이고 토속적인 면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소설에 “탁류”(1937), “태평천하”(1937), 그리고 단편 소설에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193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