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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근대문학선: 주리야

이효석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220 3 0 4 2020-04-02
크리스마스의 독특한 정서를 자아내기 족하리만치 굵은 눈 송이가 함박같이 퍼부었다. 연말을 끼고 정리되지 못한 여러 가지 일에 분주한 주화는 종일 회관에서 일을 보다가 조그만 셋방으로 돌아오니 누운 채 깊은 잠이 폭 들었다. 깊은 잠속에 꿈이 새어들고 꿈속 에서 그는 의외에도 한 여성의 방문을 받았다. 너무도 의외 의 인물의 방문에 의아하여 꿈속에서도 그는 눈을 비비고 그를 다시 바라보고 두번째 만나는 그 아름다운 여성의 자 태에 현혹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두어 주일 전에 동무들 과 같이 고향인 관북 방면에 유물론 강연을 갔을 때 S항구 에서 만난 그 여자인 것이다. 가는 곳마다 청중이 적음을 탄식하던 끝에 S항구라 예측 이상의 활기에 기운을 얻은 그 는 강연을 ..

2020 한국근대문학선: 마작철학

이효석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233 3 0 9 2020-04-01
내려찌는 복더위에 거리는 풀잎같이 시들었다. 시들은 거리 가로수 그늘에는 실업한 노동자의 얼굴이 노랗게 여위어 가고 나흘 동안― 바로 나흘 동안 굶은 아이가 도적질 할 도리를 궁리하고 뒷골목에서는 분바른 부녀가 별수없이 백통전 한 닢에 그의 마지막 상품을 투매하고 결코 센티멘탈리즘에 잠겨 본 적 없던 청년이 진정으로 자살할 방법을 생각하고 자살하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 되기를 원하였다― 도무지 무덥고 시들고 괴로운 해이다. 속히 해결이 되어야지 이대로 나가다가는 나중에는 종자도 못 찾을 것이다. 이 말할 수 없이 시들고 쪼들려가는 이 거리, 이 백성들 가운데에 아직도 약간 맥이 붙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정주사네 사랑일까?

2020 한국근대문학선: 약령기

이효석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252 3 0 5 2020-04-01
해가 쪼이면서도 바다에서는 안개가 흘러 온다. 헌칠한 벌판에 얕게 깔려 살금살금 기어오는 자주빛 안개는 마치 그 무슨 동물과도 같다. 안개를 입을 교장 관사의 푸른 지붕이 딴 세상의 것 같이 바라보인다. 실습지가 오늘에는 유난히도 넓어 보이고 안개 속에서 일하는 동물들의 모양이 몹시도 굼뜨다. 능금꽃이 피는 시절임에도 실습복이 떨리리만큼 날씨가 차다. 쇠스랑으로 퇴비를 푹 찍어 올리니 김이 무럭 나며 뜨뜻한 기운이 솟아오른다. 그 속에 발을 묻으니 제법 훈훈한 온기가 몸을 싸고 오른다. 학수는 그대로 그 위에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그 속에 전신을 묻고 훈훈한 퇴비 냄새를 실컷 맡고 싶었다.

2020 한국근대문학선: 북국사신

이효석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248 3 0 10 2020-04-01
북국의 이 항구에 두텁던 안개도 차차 엷어 갈 젠 아마 봄도 퍽은 짙었나부에. 그동안 동지들과 무사히 건투하여 왔는가? 항구에 안개 끼고 부두에 등불 흐리니 고국을 그리워하는 회포 무던히도 깊어 가네. 내가 이곳에 상륙한 지도 어언 두 주일이 넘지 않았나. 그동안 찾을 사람도 찾았고 볼 것도 모조리 보았네. 모든 인상이 꿈꾸고 상상하던 것과 빈틈없이 합치되는 것이 어찌도 반가운지 모르겠네.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다같이 위대한 건설사업에 힘쓰고 있는 씩씩한 기상과 신흥의 기분! 이것이 나의 얼마나 보고저 하고 배우고저 한 것인지 이것을 이제 매일같이 눈앞에 보고 접대하는 내 자신 신이 나고 흥이 난다면 군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겠지. 더구나 차근차근 줄기 찾고 가지 찾..

2020 한국근대문학선: 오후의 해조

이효석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260 3 0 4 2020-04-01
사무소 안의 기맥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그가 인쇄소의 문을 연 것은 오정을 조금 넘어서였다. 마음과 몸이 울르르 떨렸다. 그의 계획하여 가는 일의 위험성에서 흘러나오는 불안과 또한가지 쌀쌀한 일기에서 받는 추위 때문에였다. 십일월을 반도 넘지 않은 날씨이니 그다지 매울 때가 아니련만 늦은 비기 한 줄기 뿌리더니 며칠 전부터 일기는 별안간 쌀쌀하여졌다. 어제밤 M·H점 좁은 온돌방에서 그 집 가족들 속에 섞여 동무들과 늦도록 일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서 설핀 새우잠을 잔 것이 더한층 그를 으시시하게 하였을 것이나 그것보다도 더 많이 마음을 압도하는 일의 중량이 그를 물리적으로 떨게 하였던 것이다. 사건이 폭발한 지 불과 며칠 안되는 이제 물샐틈없는 경계망은 ..

2020 한국근대문학선: 상륙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41 3 0 29 2020-04-01
아세아 대륙의 동방 소비에트 연방의 일단. 눈앞에 거슬리는 한 구비의 산도 없이 훤히 터진 넓은 대륙의 풍경과 그 끝에 전개되어 있는 근대적 다각미를 띠운 도시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배가 반가운 기적을 뚜―뚜― 울리며 붉은 기 날리는 수많은 배 사이를 뚫고 두 가닥 진 반도의 사이를 들어가 항구 안에 슬며시 꼬리를 돌렸을 때에 그는 석탄고 속에서 문득 곤한 잠을 깨었다. 요란한 기관소리와 끊임없는 동요가 별안간 문득 그쳤기 때문이었다.

2020 한국근대문학선: 추억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57 3 0 40 2020-04-01
옛 이야기의 하나이다. 옛이야기라니 태고적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생애의 비교적 이른 시절에 속하는 이야기란 말이다. 이른 시절이라고 하여도 나의 나이 지금 오십의 고개를 반도 채 못넘었으니 이르고 지지고 할 것이 없지만 철 들고, 눈뜸이 나날이 새로운 지금으로 보면 무폭하고 주책 없던 그때는 옛시절이었었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나 이야기 속의 행동에 지금으로서 본다면 어리고 불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한 시간의 핸디캡을 붙여 가지고 읽어 주어야 할 것이다.

2020 한국근대문학선: 행진곡

이효석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245 3 0 7 2020-03-31
혼잡한 밤 정거장의 잡도를 피하여 남과 뒤떨어져서 봉천행 삼등차표를 산 그는 깊숙이 모자 밑 검은 안경 속으로 주위를 은근히 휘돌아보더니 대합실로 향하였다. 중국복에 싸인 청년의 기상은 오직 늠름하였다. 조심스럽게 대합실 안을 살펴보면서 그는 한 편 구석 벤취 위에 가서 걸터앉았다. 찻시간을 앞둔 밤의 대합실은 물끓듯 끓었다. 담화, 환조, 훈기, 불안한 기색, 서마서마한 동요, 영원한 경영, 엄숙한 생활에 움직이고 움직였다. 그 혼잡의 사이를 뚫고 괴상한 눈이 무수히 반짝였다. 시골뜨기같이 차린 친구―희조한 도리우찌, 어색한 양복저고리 짧고 깡또한 바지 어디서 주워 모았는지 너절한 후까 고무 게다가 값싼 금테 안경으로 단장한 그들의 눈은 불유쾌하리만치 날카롭게 빛..

2020 한국근대문학선: 북국점경

이효석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211 3 0 10 2020-03-31
능금나무 동산, 아름다운 옛동산, 지금에는 찾을 수 없는 그 동산…… 타락은 하였든 말았든 간에 아담 때부터 좋아하던 능금이다. 혀를 찌르는 선열한 감각, 꿈꾸게 하는 향기로운 꽃, 그리고 그리운 옛향기…… 그 옛날 이곳에 그대여 아는가 꽃 피고 열매 맺던 향기로운 능금밭 ! 언덕 위에서 시작되어 경사를 지으면서 개울가까지 뻗친 능금밭. 북국의 찬 눈이 녹아 개울가 버들가지에 물 오를 때 자주빛 능금나무 가지가지에 햇빛 흘러 동으로 십리 남으로 십리 펑퍼짐한 능금밭이 기름지게 아름아름 빛났다.

2020 한국근대문학선: 깨뜨려지는 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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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0 3 0 5 2020-03-31
저문 거리 붉은 등에 저녁 불이 무르녹기 시작할 때면 피를 말리우고 목을 짜내며 경칩의 개구리떼같이 울고 외치던 이 소리가 이 청루에서는 벌써 들리지 않았고 나비를 부르는 꽃들이 누 앞에 난만히 피지도 않았다. 「상품」의 매매와 흥정으로 그 어느 밤을 물론하고 이른 아침의 저자같이 외치고 들끓는 화려한 이 저자에서 이 누 앞만은 심히도 적막하였다. 문은 쓸쓸히 닫히었고 그 위에 걸린 홍등이 문앞을 희미하게 비치고 있을 따름이다. 사시장청 어느 때를 두고든지 시들어 본 적 없는 이곳이 이렇게 쓸쓸히 시들었을 적에는 반드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없었다. 몇백원이나 몇천원 계약에 팔려서 처음으로 이 지옥에 들어오면 너무도 기막힌 일에 무섭고 겁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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