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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301: 영당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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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59 2 0 55 2016-04-27
내가 절에 온지 며칠 되어서 아침에 나서 거닐다가 이상한 노인 하나를 보았다. 회색 상목으로 지은 가랑이 넓은 바지에 행전 같은 것으로 정강이를 졸라매고 역시 같은 빛으로 기장 길고 소매 넓은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헝겊으로 만든 승모를 쓴 것까지는 늙은 중으로 의례히 하는 차림차리지마는 이상한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주름이 잡히고 눈썹까지도 세었으나 무척 아름다왔다. 여잔가, 남잔가. 후에 알고 보니 그가 영당 할머니라는 이로서 연세가 칠십 팔, 이 절에 와 사는지도 사십년이 넘었으리라고 한다. 지금 이 절에 있는 중으로서는 그중에 고작 나이가 많은 조실 스님도 이 할머니보다 나중에 이 절에 들어왔으니 이 할머니가 이 절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한국문학전집302: 여름의 유모어

이광수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504 2 0 61 2016-04-27
보는 마음, 보는 각도를 따라서 같은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극치에 달하면 같은 세계를 하나는 지옥으로 보고, 다른 이는 극락으로 보고 또 다른 이는 텅빈 것으로 보는 것이다. 농촌의 여름도 그러하다. 이것을 즐겁게 보는 이도 있고 괴롭게 보는 이도 있고 또 고락이 상반으로 보는 이도 있다. 어느 것이 참이요 어느 것이 거짓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와 그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다. 여름의 농촌을 유모어의 마음으로 유모어의 각도에서 보는 것도 한 보는 법일 것이다.

한국문학전집303: 성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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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12 2 0 65 2016-04-27
西紀一九三四年七月[서기 일구삼사년 칠월], 榮兒[영아]는 紅疫[홍역]을 치르고 나고, 廷蘭[정란]도 봄철에 紅疫[홍역]을 치르고 난 뒤로 잘 추서지 아니할 뿐더러 이웃집에 百日咳[백일해]를 앓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元山 [원산] 海水浴場[해수욕장]에 나가서 한여름을 나리라 하고, 밤차로 떠날양으로 짐을 끌어 내려 할 때에 어멈이 말썽을 부려서 元山行[원산행]을 中止[중지]하고, 그 이튿날 이왕 묶어 놓은 짐이요, 가까운 少林寺[소림사]로 나가자고 하여 彰義門外[창의문외]에 少林寺[소림사]로 나오게 되었다.

한국문학전집304: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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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57 2 0 65 2016-04-27
이것은 나 自身 [자신]에 關[관]한 이야기도 아니요, 또 「人生[인생]의 香氣[향기]」도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一部分[일부분]은 내가 目擊[목격]한 一部分[일부분]일 뿐더러, 내 一生[일생]의 經驗中[경험중]에서 罪[죄]에 關[관]한 가장 深刻[심각]한 印象[인상]을 준 것으로 잊혀지지 않는 實話[실화]다.

한국문학전집305: 뻐꾸기와 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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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69 2 0 63 2016-04-27
오늘 새벽 ― 새벽이라기보다는 이른 아침에 나는 홀로 묵상에 잠겨 있을 때, 참새들의 첫소리 그리고 멧새의 예쁜 소리, 다음에 비둘기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어제 내린 봄비에 그렇게도 안 간다고 앙탈을 하던 추위도 가버리고 오늘 아침에는 자욱하게 낀 봄안개 하며, 감나무 가지에 조롱조롱 구슬같이 달린 물방울 하며, 겨우내 잠잠하다가 목이 터진 앞 개울물 소리 하며, 아직 철 보아서는 춥기는 춥건마는 봄맛이 난다. 갑자기 불현듯 나는 봄기운, 그것은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어떤 슬픔을 자아낼 때에 그때에 어디선지 끊일락 이을락 들려 오는 비둘기 소리. 내 마음이 슬픈 때 인지라 그런지 금년 잡아 처음 듣는 비둘기 소리가 유난히 슬픔을 자아낸다.

한국문학전집306: 죽은 새

이광수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70 2 0 62 2016-04-27
나는 지팡이를 끌고 절 문을 나섰다. 처음에는 날마다 돌던 코스로 걸으려다가 뒷고개턱에 이르러서, 안 걸어 본 길로 가 보리라는 생각이 나서, 왼편 소로로 접어들었다. 간밤 추위에 뚝 끊였던 벌레 소리가 찌듯한 볕에 기운을 얻어서 한가로이 울고 있다. 안 걸어 본 길에는 언제나 불안이 있다.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길 가에 무슨 위험은 없나 하여서 버스럭 소리만 나도 쭈뼛하여 마음이 씐다. 내 수양이 부족한 탓인가. 이 몸뚱이에 붙은 본능인가. 이 불안을 이기고 모르는 길을 끝끝내 걷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을 보면 길 없던 곳에 첫 걸음을 들여놓은 우리 조상님네는 큰 용기를 가졌거나 큰 필요에 몰렸었을 것이라고 고개가 숙어진다. 성인이나 영웅은 다 첫길을..

한국문학전집307: 서백리아의 이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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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08 2 0 64 2016-04-27
나는 歐羅巴[구라파]를 經由[경유] 하여 北美 [북미]로 가는 路次[노차]에 海蔘威[해삼위]를 거치어 吉林省穆陵縣[길림성 목릉현]인 中東線[중동선] 물린 驛[역]에, 병으로 누우신 秋汀[추정]李甲先生[이갑 선생]을 아니 찾을 수 없었다. 秋汀[추정]과 나는 前面[전면]이 없다. 그렇지마는 그때 朝鮮[조선] 靑年[청년]으로 秋汀[추정]李甲[이갑]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국문학전집308: 상해 이일 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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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88 2 0 67 2016-04-27
나는 世界一週[세계일주] 無錢族行[무전족행]을 할 생각으로 四年間[사년간] 人生[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時期[시기]를 바친 五山學校[오산학교]를 떠나서 安東縣[안동현]에를 갔다. 五山學校[오산학교]를 떠날 때에 여러 어린 學生[학생]들이 二十里[이십리] 三十里[삼십리]를 따라오며 눈물로써 惜別[석별]해 준 情境[정경]은 내 一生[일생]에 가장 잊히지 못할 重大性 [중대성] 있는 事件[사건]이다.

한국문학전집300: 봉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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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709 2 0 90 2014-01-31
이광수의 단편소설이다. 鳳兒[봉아]야, 네가 이 世上[세상]을 떠난지 벌써 나흘이 지났구나. 문소리가 날 때마다 혹시나 네가 들어 오는가 하고 고개를 돌린다. 한길 가에서 지나가는 전차와 자동차를 보고 섰는가, 장난감 가게에서 갖고 싶은 장난감을 못 사서 시무룩하고 섰는가, 대문간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지고 딱지치기를 하는가. 잠깐 어디 나가 있다가 금시에 「엄마, 엄마, 엄마」하고 뛰어 들어올 것만 같구나. 그렇지만, 아아, 나는 분명히 네 몸에 수의를 입히고, 네 말 없는 입에 쌀 세 알을 물리고 너를 솔나무 널로 짠 관에 넣고, 그 위에 「愛兒李鳳根[애 아이봉근] 安息之處[안식지처]」라는 명정을 내 손으로 써서 분명히 미아리 묘지에 내다가 묻었다. 횡대..

한국문학전집223: 왕자호동

김동인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84 2 0 69 2016-04-15
무르익었던 봄빛도 차차 사라지고 꽃 아래서 돋아나는 푸르른 새 움이 온 벌을 장식하는 첫여름이었다. 옥저(沃沮) 땅 넓은 벌에도 첫여름의 빛은 완연히 이르렀다. 날아드는 나비, 노래하는 벌떼─ 만물은 장차 오려는 성하(盛夏)를 맞기에 분주하였다. 이 벌판 곱게 돋은 잔디밭에 한 소년이 딩굴고 있다. 그 옷차림으로 보든지 또는 얼굴 생김으로 보든지 고귀한 집 도령이 분명한데, 한 사람의 하인도 데리지 않고 홀로이 이 벌판에서 딩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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