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다른 세 복음서에서 살펴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실, 요한복음이 다루는 기간은 다른 복음서와 같습니다. 이미 살펴본 사건들 중 일부가 요한복음에서 다시 언급됩니다.
처음 세 복음서의 이야기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분이 요한이 두드러지게 표현한 분과 동일하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습니다.
요한복음은 어조가 더 고상하고, 관점이 더 고귀하며, 그 내용은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영적인 관계를 우리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더 높은 영광이 예수님의 비할 데 없는 인격으로 드러납니다. 처음 세 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를 인간적인 관계에서 바라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마가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종으로, 누가복음은 인자로 소개하지만 요한은 그분의 신성한 영광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서, 마태복음은 특별히 유대인을 위해,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 누가복음은 사람을 위해 쓰여졌지만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가족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신약성경의 네 번째 책으로, 숫자 4 는 3 더하기 1 입니다(4
=3+1). 성경에서 숫자는 우연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신성한 구별과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습니다. 경건한 연구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변덕에 따라 자유롭게 혼합할 수 없습니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개혁주의 성경교사이며 설교자 중의 한사람.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났으며, 약간의 음악 공부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의 어린 시절이나 교육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영국의 자유주의 신학교에 다니기를 꺼려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무디성경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평생을 성경 연구와 설교 사역에 헌신했다. 미국 켄터키 주 버크스빌과 올버니에 있는 교회들의 공동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튼버그에 있던 노스 사이드 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1918년, 첫 번째 책으로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을 썼다. 그리고 1922년 1월, 월간지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 첫 호를 발간했으며, 30여 년 동안 거의 자신의 글들로 지면을 채웠다. 그 글들은 대개 성경 강해와 주석이었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그의 연구 주제는 은혜, 칭의, 그리고 성화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사역은 강렬한 그의 설교 스타일 때문에 교회들의 외면을 받았다. ‘듣기 좋은 설교’가 주를 이뤘던 당시의 교회들에게 심한 배척을 받게 된다. 비록 당대에는 주목 받지 못했으나, 핑크의 사역은 그의 사후에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1982년, 미국 베이커 출판사는 그의 책 22권을 출간했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아더 핑크의 구원신앙」,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히브리서 강해」, 「창세기 강해」, 「출애굽기 강해」, 「다윗의 생애」,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의 속죄」, 「성화론」, 「인간의 좌절과 하나님의 위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