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왜 본성적인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시작점으로 요한복음 6장 44절을 다시 한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고난한 말씀"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이 타락으로 인해 초래된 끔찍한 파괴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 자신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재앙"(왕상 8:38)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일 성령께서 그들을 영적 죽음의 잠에서 깨우시고, 그들이 본성적으로 얼마나 무서운 상태에 있는지 보게 하시고, 그들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롬 8:7)라는 것을 느끼게 하셨다면,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이 엄숙한 말씀에 트집을 잡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자는 영적으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개혁주의 성경교사이며 설교자 중의 한사람.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났으며, 약간의 음악 공부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의 어린 시절이나 교육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영국의 자유주의 신학교에 다니기를 꺼려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무디성경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평생을 성경 연구와 설교 사역에 헌신했다. 미국 켄터키 주 버크스빌과 올버니에 있는 교회들의 공동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튼버그에 있던 노스 사이드 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1918년, 첫 번째 책으로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을 썼다. 그리고 1922년 1월, 월간지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 첫 호를 발간했으며, 30여 년 동안 거의 자신의 글들로 지면을 채웠다. 그 글들은 대개 성경 강해와 주석이었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그의 연구 주제는 은혜, 칭의, 그리고 성화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사역은 강렬한 그의 설교 스타일 때문에 교회들의 외면을 받았다. ‘듣기 좋은 설교’가 주를 이뤘던 당시의 교회들에게 심한 배척을 받게 된다. 비록 당대에는 주목 받지 못했으나, 핑크의 사역은 그의 사후에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1982년, 미국 베이커 출판사는 그의 책 22권을 출간했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아더 핑크의 구원신앙」,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히브리서 강해」, 「창세기 강해」, 「출애굽기 강해」, 「다윗의 생애」,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의 속죄」, 「성화론」, 「인간의 좌절과 하나님의 위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