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최선을 누리는 것은 우리의 영적 삶에서 그분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현세적인 필요를 위해 그분께서 특별히 개입하시는 것도 포함합니다. 저희는 지금 하나님의 섭리의 일반적인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불리하더라도, 악인들 중 다수가 한동안 육신과 재산에서 번영하기 때문에, 저희가 그분의 최선을 놓쳤다고 두려워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분의 심판이 임하는 날이나, 수단을 사용해도 더 이상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분께서 "천 명이 네 곁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니…재앙이 네게 내리지 아니하며 전염병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시 91:7, 10)라는 약속을 이루시는, 우리를 위한 그분의 분명하고도 뚜렷한 개입입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지역 사회를 강타할 때 우리는 살아남고, 떨어지는 폭탄이 이웃집을 파괴할 때 우리 집은 무사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이 삶에서 가능할까요?
절대적으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 적지 않은 수가 스스로 그 현실을 경험합니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개혁주의 성경교사이며 설교자 중의 한사람.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났으며, 약간의 음악 공부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의 어린 시절이나 교육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영국의 자유주의 신학교에 다니기를 꺼려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무디성경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평생을 성경 연구와 설교 사역에 헌신했다. 미국 켄터키 주 버크스빌과 올버니에 있는 교회들의 공동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튼버그에 있던 노스 사이드 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1918년, 첫 번째 책으로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을 썼다. 그리고 1922년 1월, 월간지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 첫 호를 발간했으며, 30여 년 동안 거의 자신의 글들로 지면을 채웠다. 그 글들은 대개 성경 강해와 주석이었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그의 연구 주제는 은혜, 칭의, 그리고 성화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사역은 강렬한 그의 설교 스타일 때문에 교회들의 외면을 받았다. ‘듣기 좋은 설교’가 주를 이뤘던 당시의 교회들에게 심한 배척을 받게 된다. 비록 당대에는 주목 받지 못했으나, 핑크의 사역은 그의 사후에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1982년, 미국 베이커 출판사는 그의 책 22권을 출간했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아더 핑크의 구원신앙」,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히브리서 강해」, 「창세기 강해」, 「출애굽기 강해」, 「다윗의 생애」,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의 속죄」, 「성화론」, 「인간의 좌절과 하나님의 위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