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먼저,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성령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비교적 적은 것 같고, 그 결과 주님께서는 마땅히 받으셔야 할 찬양의 대부분을 빼앗기시고 많은 주님의 백성은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보다는 감각에 따라, 말씀보다는 감정과 기분에 따라 자신을 측정하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가 크게 파괴되고 마음의 기쁨이 많이 감소합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이 주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심각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우리의 영적 상태를 더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성경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많은 훈련을 받은 성도들도 바로 이 지점에서의 실패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의견을 형성합니다. 분명히 우리가 영적인 진보 또는 퇴보를 올바르게 판단하여 한편으로는 자신을 아첨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부당하게 평가 절하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매우 실용적인 문제입니다.
부분적으로는 개인적인 기질에 따라, 부분적으로는 받은 가르침의 종류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한 방향으로, 어떤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유혹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높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진리에 대한 지적 지식이 상당히 증가했기 때문에 그에 비례하여 영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약하고 사물에 대한 정신적 이해가 더딘 사람들은 이것이 영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성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 한 우리는 크나큰 오류에 빠지게 되고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활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동안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실제로는 건강하고 건전한데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만이 우리가 아기인지, 청년인지, 장년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며, 육신적인 나이는 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개혁주의 성경교사이며 설교자 중의 한사람.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났으며, 약간의 음악 공부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의 어린 시절이나 교육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영국의 자유주의 신학교에 다니기를 꺼려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무디성경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평생을 성경 연구와 설교 사역에 헌신했다. 미국 켄터키 주 버크스빌과 올버니에 있는 교회들의 공동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튼버그에 있던 노스 사이드 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1918년, 첫 번째 책으로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을 썼다. 그리고 1922년 1월, 월간지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 첫 호를 발간했으며, 30여 년 동안 거의 자신의 글들로 지면을 채웠다. 그 글들은 대개 성경 강해와 주석이었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그의 연구 주제는 은혜, 칭의, 그리고 성화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사역은 강렬한 그의 설교 스타일 때문에 교회들의 외면을 받았다. ‘듣기 좋은 설교’가 주를 이뤘던 당시의 교회들에게 심한 배척을 받게 된다. 비록 당대에는 주목 받지 못했으나, 핑크의 사역은 그의 사후에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1982년, 미국 베이커 출판사는 그의 책 22권을 출간했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아더 핑크의 구원신앙」,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히브리서 강해」, 「창세기 강해」, 「출애굽기 강해」, 「다윗의 생애」,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의 속죄」, 「성화론」, 「인간의 좌절과 하나님의 위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