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신 것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문제는 그들이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자신들의 논리적인 생각에 자부심을 갖고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이나 모호한 것을 믿도록 요구받은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일 수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영광스럽고 의기양양한 승리의 메시아가 되거나, 아니면 그는 버림받고 굴욕을 당하는 메시아가 될 것입니다. 둘 다 참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르시되 어리석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누가복음 24:25)”
20세기 초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개혁주의 성경교사이며 설교자 중의 한사람.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났으며, 약간의 음악 공부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의 어린 시절이나 교육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영국의 자유주의 신학교에 다니기를 꺼려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무디성경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평생을 성경 연구와 설교 사역에 헌신했다. 미국 켄터키 주 버크스빌과 올버니에 있는 교회들의 공동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튼버그에 있던 노스 사이드 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1918년, 첫 번째 책으로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을 썼다. 그리고 1922년 1월, 월간지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 첫 호를 발간했으며, 30여 년 동안 거의 자신의 글들로 지면을 채웠다. 그 글들은 대개 성경 강해와 주석이었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그의 연구 주제는 은혜, 칭의, 그리고 성화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사역은 강렬한 그의 설교 스타일 때문에 교회들의 외면을 받았다. ‘듣기 좋은 설교’가 주를 이뤘던 당시의 교회들에게 심한 배척을 받게 된다. 비록 당대에는 주목 받지 못했으나, 핑크의 사역은 그의 사후에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1982년, 미국 베이커 출판사는 그의 책 22권을 출간했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아더 핑크의 구원신앙」,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히브리서 강해」, 「창세기 강해」, 「출애굽기 강해」, 「다윗의 생애」,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의 속죄」, 「성화론」, 「인간의 좌절과 하나님의 위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