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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근대문학선: 일기

며칠 전부터 거리에 유숙하고 있는 순회극단의 단장의 딸인 여배우가 지난날 아침 여관 방에서 돌연 해산을 하였으나 달이 차지 못한 산아는 산후 즉시 목숨이 꺼져 버렸다는―근래의 소식을 우연히 아내에게서 듣고 나는 아침 내내 그 생각에 잠겼다. 여배우는 그 전날 밤까지도 무대에 섰다 하니 오랫동안의 불여의한 지방순회에 끌려 다니느라고 기차에 흔들리고 무대에 피곤한 끝에 그 참경을 당하였음이 확실하다. 어린 시체를 동무들과 함께 근처 산에 묻고 온 산아의 아비인 남배우는 울적한 심사를 못이기면서도 저녁 연극이 시작되려 할 때(낯설은 곳에 핏덩어리를 묻은 오늘 오히려 무대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누나) 탄식하고 그의 역편인 <아리랑>의 주연의 화장으로 힘없는 얼굴의 표정을 감추었다고 전한다. 열 일곱밖에..
며칠 전부터 거리에 유숙하고 있는 순회극단의 단장의 딸인 여배우가 지난날 아침 여관 방에서 돌연 해산을 하였으나 달이 차지 못한 산아는 산후 즉시 목숨이 꺼져 버렸다는―근래의 소식을 우연히 아내에게서 듣고 나는 아침 내내 그 생각에 잠겼다.

여배우는 그 전날 밤까지도 무대에 섰다 하니 오랫동안의 불여의한 지방순회에 끌려 다니느라고 기차에 흔들리고 무대에 피곤한 끝에 그 참경을 당하였음이 확실하다. 어린 시체를 동무들과 함께 근처 산에 묻고 온 산아의 아비인 남배우는 울적한 심사를 못이기면서도 저녁 연극이 시작되려 할 때(낯설은 곳에 핏덩어리를 묻은 오늘 오히려 무대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누나) 탄식하고 그의 역편인 <아리랑>의 주연의 화장으로 힘없는 얼굴의 표정을 감추었다고 전한다.

열 일곱밖에는 안된 영락의 여배우와 그의 애인인 낙백의 남배우―나는 웬일인지 루놀망의 <낙오자의 무리>를 문득 생각하며 두 사람을 그 작품속에 「그 여자」와 「그」에게 비겨도 보았다. 학교에서는 훈화가 있어 학생들에게 관극을 금하였다. 나는 두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수록에 그 조그만 극단의 생활을 위협하는 결과가 되는 나의 「교육」의 직무를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 이날에 시작된 것은 아니나 이런 생각에서 오는 우울도 덮쳐서 나는 이날 유심히고 출근의 길이 울가망하고 싫은 것이었다.

기어코 좋은 일은 없었다. 나는 이날을 「흉일」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침 수업이 막 시작되려할 무렵에 급사가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직원실로 뛰어 들어왔다.
이효석은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이때 만난 친구로는 영문학자이자 법학자이며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기초하는데 참여한 유진오, 해방후 초대~5대 국회의원을 연임한 5선 국회의원이자 자유당의 온건파 정치인 이재학이 있었다. 이들은 그의 경성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 역문과 동문으로 졸업 후에도 그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단편 《도시와 유령》이 발표됨으로써 동반자작가(同伴者作家)로 데뷔하였다. 계속해서 《행진곡(行進曲)》, 《기우(奇遇)》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회(九人會)에 참여, 《돈(豚)》, 《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젊은 시절의 그는 '가난뱅이 작가'였다. 그는 돈없이 자신의 가난하고 빈한한 처지를 스스로 '가난뱅이 작가'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가난뱅이 작가였던 이효석은 경성 토호 집안이었던 처가에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백방으로 직업을 구했다. 중학 시절 은사가 주선해준 취직 자리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였다. 문인들의 작품을 사전 검열하는 곳이다. 동료들의 지탄이 빗발쳤다. 결국 이효석은 열흘 만에 조선총독부를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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