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물에 말을 ‘씻고 백두산 돌에 칼을 갈아 적군을 토평하리라’는 호기로운 노래를 부르던 남이 장군은 그 아내 권씨가 얼굴과 자태만 절대 미인일 뿐더러 또한 장군에게 지지 안 할 총명과 지혜를 가진 부인이라 남이 장군이 매우 사랑하였다. 장군이 어제는 이웃의 동무 두 사람과 함께 서울 동대문 밖 호국사란 절에 놀러 나아가 이야기가 자기의 아내 자랑에 미쳐 “내 아내는 그 외양만 사랑할 만할 뿐 아니라 그 속마음까지도 철석같아 참 믿을 만한 여자라.”고 자랑하니 그 두 동무도 장군과 같은 미인의 아내를 두었던지 덩달아 각기“내 아내도 남만 못한 여자는 아니라.”고 자랑하였다.
신채호는 젊은 시절 애국 계몽 운동가로서 주로 언론 저술 활동에 종사했고, 일제하에서는 러시아, 만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가로서 활약했다. 또한 사학자로서 한평생 ‘민족’과 ‘역사’를 화두로 당시 국정과 일본의 불의를 통렬히 비판하며 조선 민중의 혼을 깨우는 데 앞장섰다. 그는 만주와 시베리아의 수많은 유적지들을 직접 돌아다니고 수많은 사료들을 접하면서 우리 고대사(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처참해서 눈물을 뿌릴 것”이라고 통탄했다. 그가 민족 독립과 민중 해방을 위한 방편으로 아나키스트 운동에 투신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에 있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엇갈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