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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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저자: 김동인
나는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가 이상한 병에 걸리기는 다섯 달 전쯤이다. 처음에는 입맛이 없어져서 음식은 못 먹으면서도 배는 차차 불러지고, 배만 불러질 뿐 아니라, 온몸이 부으며 그의 얼굴은 바늘 끝으로 꼭 찌르면 물이라도 서너 그릇 쏟아질 것같이 누렇게 되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배도 그 이상으로 되었다 한다. 그렇다고 몸이 어디가 아프냐 하면 그렇지 않고, 다만 어지럽고 때때로 구역이 날 뿐이다.
그는 S의원에 다니면서 약을 먹었다. 그러나 병은 조금도 낫지 않고 점점 더해 갈 뿐이다. 마침내 그는 S의원에 입원하였다.
나는 매일 그를 찾아가보았다. 그는 언제든지 안락의자에 걸터앉아 있다가 내가 가면 기뻐서 맞고 곧 담배를 청한다. 예수교 병원이라 입원 환자의 담배 먹는 것을 금하므로 그는 내가 가야 담배를 먹는다. 간호부는 그와 서로 아는 처지이므로 다만 씩 웃고 볼 따름이다. 그의 뛰노는 성질은 병원 안에 가만히 갇혀 있는 생활이 무한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무슨 일로 여행을 좀 하게 되어 그 준비로 이삼 일 동안 병원에 못 갔다가, 이삼 일 뒤에 작별을 하러 가니까 그의 병이 격변하여 면회 사절이라 한다. 원장은 마지막 그에게 죽음을 선고하였단 말을 들었다.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왔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