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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읽으며: 김덕수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해방 직후였다. 나는 어떤 동업 일본인 변호사의 집을 한 채 양도받아가지고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와서 대강한 정리도 된 어떤 날 집으로 돌아오니까 아내는, “김덕수네가 이 동네에 삽디다그려.” 하는 보고를 하였다. “김덕수란? 형사 말이요?” “네…… 애국반장짜리, 애희의 남편.” “반장도 그럼 함께?” “네…….” “녀석도 적산 한 채 얻은 셈인가?” “아마 그런가봐요. 게다가 그냥 이 해방된 나라에서도 경관 노릇을 하는 지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경부 차림을 하고 다니던걸요…….”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해방 직후였다.

나는 어떤 동업 일본인 변호사의 집을 한 채 양도받아가지고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와서 대강한 정리도 된 어떤 날 집으로 돌아오니까 아내는,

“김덕수네가 이 동네에 삽디다그려.”

하는 보고를 하였다.

“김덕수란? 형사 말이요?”

“네…… 애국반장짜리, 애희의 남편.”

“반장도 그럼 함께?”

“네…….”

“녀석도 적산 한 채 얻은 셈인가?”

“아마 그런가봐요. 게다가 그냥 이 해방된 나라에서도 경관 노릇을 하는 지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경부 차림을 하고 다니던걸요…….”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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