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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문학관

그는 〈개벽〉 도쿄(東京)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1920년 7월호에 시 〈갈마반도〉와 12월호에 소설 〈그날 밤〉을 발표했다. 이해 발표한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면서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이 무렵부터 어린이에 대한 권익 보호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21년 5월 1일 김기전(金起田)·이정호(李定浩) 등과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라는 표어 아래 본격적인 소년운동을 전개했다. 1922년에는 천도교소년회 중심으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개벽사에서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펴냈다. 1923년 3월 20일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그는 〈개벽〉 도쿄(東京)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1920년 7월호에 시 〈갈마반도〉와 12월호에 소설 〈그날 밤〉을 발표했다. 이해 발표한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면서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이 무렵부터 어린이에 대한 권익 보호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21년 5월 1일 김기전(金起田)·이정호(李定浩) 등과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라는 표어 아래 본격적인 소년운동을 전개했다. 1922년에는 천도교소년회 중심으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개벽사에서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펴냈다. 1923년 3월 20일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그해 5월 1일 도쿄에서 손진태(孫晉泰)·윤극영(尹克榮)·진장섭(秦長燮)·고한승(高漢承) 등과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했다. 색동회는 발기회록에서 "동화 및 동요를 중심으로 하고 일반 아동문제까지 할 사"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동화구연대회·아동예술강습회·아동예술전람회·소년문제강연회 등을 열어 소년운동단체의 통일을 꾀했고, 1925년에는 소년운동협의회 지도위원, 1927년에는 조선소년연합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28년 조선소년연합회가 조선소년총동맹으로 개편되고 소년운동 노선이 변화하자 일선에서 물러나 〈어린이〉·〈학생〉 등의 편집에 힘썼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익힌 이야기 솜씨로 어린이뿐 아니라 죄수들에게까지 동화구연을 했는데, 듣는 사람은 모두 감정이 고조되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다고 전한다. 매년 70회가 넘는 동화 구연과 강연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는데, 이로 인해서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 비만인 데다가 고혈압이 있었는데, 1931년부터 과로가 겹치고 줄담배의 영향으로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되어 1931년 7월 23일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한국 아동문학 초창기에 활동한 작가. 호는 소파(小波), 필명은 잔물·금파리·북극성·몽중인. 어린이를 위한 동화의 창작과 계몽 활동을 통해 아동 복지와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고, '어린이날'을 제정했으며,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했다. 33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아동 운동에 헌신하여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소파상'이 제정되어 해마다 시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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