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전]에 어느 시골에 벳접이나 하고, 소바리나 매고, 衣食住[의식주]에 아모 걱정 없는 身世[신세] 便[편]한 老人[노인]이 하나 있었다. 게다가 近
洞[근동]에서 젊운 總角[총각]들이 모두둘 침을 흘이는 絶色[절색]의 아릿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老人[노인]도 인제는 살 나이를 다 살고, 앞이 들
여다 보일만치 뱃삭 짧아저 어떻게 그럴듯한 젊은 새내를 하나 求[구]하여 데레사우를 하여 제 뒤를 잇게 하고저 하는 마음이 났다.
충북 괴산 출신으로 청주고보 졸업뒤 경성제대 중문과를 졸업(1940년)하고 휘문고 교사를 거쳐 서울대 중문과 조교수(1946~49)를 지냈다. 해방 직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문학동맹’에서 활동했다. 학내 이념 대립 와중에 좌익으로 규정돼 교수직을 그만두었다가 인공치하에서 대학에 복귀해 몇달간 ‘반짝 총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