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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어머니날 (한국문학전집: 나혜석 09)

파리 여자라면 사치나 하고 놀기나 잘 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알뜰살뜰하게 오밀조밀하게 앙실방실하게 아양도양하게, 사접시를 깨뜨리게 깔깔 대고 깨가 옥실옥실 쏟아지듯 속살거려, 사람 그것이 곧 그대로 예술품이어서 싫증이 없고 고통을 잊고 비애가 없는 그날그날 새 기분을 창작해 내는 파리 가정의 주부생활이다.
파리 여자라면 사치나 하고 놀기나 잘 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알뜰살뜰하게 오밀조밀하게 앙실방실하게 아양도양하게, 사접시를 깨뜨리게 깔깔
대고 깨가 옥실옥실 쏟아지듯 속살거려, 사람 그것이 곧 그대로 예술품이어서 싫증이 없고 고통을 잊고 비애가 없는 그날그날 새 기분을 창작해 내는
파리 가정의 주부생활이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아명(兒名)은 나아지(羅兒只), 나명순(羅明順)이며, 아호는 정월(晶月)이다.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1918년 귀국하여 화가,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였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이후 1918년 12월부터 박인덕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준비,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뒤 1920년 김우영과 결혼, 그를 따라 만주와 프랑스 등을 여행하였으며 그림, 조각, 언론, 문필, 시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유럽과 미국 시찰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여행길에 올라 '조선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 여성'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프랑스에 체류하던 중 야수파, 인상주의, 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한때 여러 남성들과의 연애로 문제가 되었으나 곧 그림활동에 매진하던 중, 외교관 최린과의 염문으로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뒤에 최린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된다.

1935년 정조 취미론을 발표, 순결과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닌 취미'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순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성욕을 품는 한국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였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고 집안의 뜻에 따라 결혼하는 것에 대한 비판,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성들에 대한 비판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의 유명한 신여성으로, 뛰어난 미모와 함께 그림, 글, 시 등 다방면에 재주를 갖춘 근대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주장하였다. 박인덕, 김일엽, 허정숙 등과 함께 이혼 후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문재(文才)도 뛰어났으며, 일본 유학 때부터 여권신장의 글을 발표한 여권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연기자 나문희(본명 나경자)의 고모할머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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