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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아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3)

어느 때나 권력 그것보다 권력에 아부하는 그 아부가 더 무섭다. 권력에는 그래도 사리의 분변이 어느 정도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아부는 맹목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에 있어서도 소위 그 내선 일체를 부르짖던 그 정책보다 그 정책에 아부하는 그 아부배가 더 무서웠다. 자기 개인의 일시적인 영화를 위하여 혹은 자기의 신변 보장만을 위하여 혹은 사리에 눈이 어두운 이 아부의 맹종은 과연 무서운 것이었다. 거기엔 수단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권력이 말하는 정책에 협조가 없으면 그저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어 놓으므로 아부의 도구를 삼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었다. 이것도 일본인이 아니고 동족인 같은 혈통끼리의 행동이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이 와중에서 벗어나던 8·15를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도 잊지 못한다.
어느 때나 권력 그것보다 권력에 아부하는 그 아부가 더 무섭다. 권력에는 그래도 사리의 분변이 어느 정도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아부는 맹목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에 있어서도 소위 그 내선 일체를 부르짖던 그 정책보다 그 정책에 아부하는 그 아부배가 더 무서웠다. 자기 개인의 일시적인 영화를 위하여 혹은 자기의 신변 보장만을 위하여 혹은 사리에 눈이 어두운 이 아부의 맹종은 과연 무서운 것이었다. 거기엔 수단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권력이 말하는 정책에 협조가 없으면 그저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어 놓으므로 아부의 도구를 삼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었다. 이것도 일본인이 아니고 동족인 같은 혈통끼리의 행동이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이 와중에서 벗어나던 8·15를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도 잊지 못한다.
정치나 이념을 자제하고 또한 계몽적이지 않은 순수 문학을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이며 본관은 수안(送安)이고 아호(雅號)는 우서(雨西)이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의 대지주 집안에서 아버지 계항교(桂恒敎)의 1남 3녀 중 첫째로 출생하였다. 계용묵 그의 할아버지인 계창전(桂昌琠)은 조선 말기에 참봉을 지냈다. 아울러 계용묵에게는 이복 여동생이 3명 있었다.

삼봉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할아버지 계창전에 의해 강제로 고향으로 끌려갔다. 성인이 된 뒤 그는 청년기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뒤늦게 일본으로 유학, 도요 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기도 했다.

1920년 《새소리》이라는 소년 잡지에 《글방이 깨어져》라는 습작 소설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첫 등단하였고 1925년 《생장》이라는 잡지에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라는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27년 《상환》을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본격 소설가 등단하였다. 《최서방》, 《인두지주》 등 현실적이고 경향적인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약 10여년 가까이 절필하였다. 한때 그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5년 인간의 애욕과 물욕을 그린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부터 순수문학을 지향하였고 1942년 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비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묘사가 정교하여 단편 소설에서는 압축된 정교미를 잘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병풍 속에 그린 닭》,《상아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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