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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1)

한 점의 혈육도 남기지 못한 어떤 젊은 과부가 남편의 삼년상도 치르기 전에 개가할 의향을 가지고 하루는 약간 소중한 물건만을 대강 추려서 한 보퉁이 싸이고 집을 나섰다. 얼마쯤 걸어가다가 이 과부는 어떤 산 모롱고지에 이르자 마주 바라보이는 건넛산 공동묘지로 저도 모르게 눈이 쏠렸다. 우뚝 걸음을 세우고 바라보았다. 거기엔 고인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올송졸송 공지가 없이 둘러 붙은 그 무덤들 가운데서 이 과부는 어느 것이 남편의 무덤일까를 일심으로 찾기에 바빴다. 아직 잔디풀이 완전히 무덤을 덮지 못한 하나의 새 무덤, 분명히 그것이 남편의 무덤인 것을 알게 되자 이 과부는 소스라쳐 놀랐다. 그 무덤 옆에는 틀림없는 자기의 남편이 이전 생시 모양으로 새까만 주의(周衣)를 입고 서서 손을 헤기는 것이었..
한 점의 혈육도 남기지 못한 어떤 젊은 과부가 남편의 삼년상도 치르기 전에 개가할 의향을 가지고 하루는 약간 소중한 물건만을 대강 추려서 한 보퉁이 싸이고 집을 나섰다.
얼마쯤 걸어가다가 이 과부는 어떤 산 모롱고지에 이르자 마주 바라보이는 건넛산 공동묘지로 저도 모르게 눈이 쏠렸다. 우뚝 걸음을 세우고 바라보았다. 거기엔 고인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올송졸송 공지가 없이 둘러 붙은 그 무덤들 가운데서 이 과부는 어느 것이 남편의 무덤일까를 일심으로 찾기에 바빴다. 아직 잔디풀이 완전히 무덤을 덮지 못한 하나의 새 무덤, 분명히 그것이 남편의 무덤인 것을 알게 되자 이 과부는 소스라쳐 놀랐다.
그 무덤 옆에는 틀림없는 자기의 남편이 이전 생시 모양으로 새까만 주의(周衣)를 입고 서서 손을 헤기는 것이었다.
정치나 이념을 자제하고 또한 계몽적이지 않은 순수 문학을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이며 본관은 수안(送安)이고 아호(雅號)는 우서(雨西)이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의 대지주 집안에서 아버지 계항교(桂恒敎)의 1남 3녀 중 첫째로 출생하였다. 계용묵 그의 할아버지인 계창전(桂昌琠)은 조선 말기에 참봉을 지냈다. 아울러 계용묵에게는 이복 여동생이 3명 있었다.

삼봉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할아버지 계창전에 의해 강제로 고향으로 끌려갔다. 성인이 된 뒤 그는 청년기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뒤늦게 일본으로 유학, 도요 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기도 했다.

1920년 《새소리》이라는 소년 잡지에 《글방이 깨어져》라는 습작 소설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첫 등단하였고 1925년 《생장》이라는 잡지에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라는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27년 《상환》을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본격 소설가 등단하였다. 《최서방》, 《인두지주》 등 현실적이고 경향적인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약 10여년 가까이 절필하였다. 한때 그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5년 인간의 애욕과 물욕을 그린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부터 순수문학을 지향하였고 1942년 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비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묘사가 정교하여 단편 소설에서는 압축된 정교미를 잘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병풍 속에 그린 닭》,《상아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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