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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문화건설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36)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드디어 조선 민족은 일본의 군국주의적 압제와 식민지적 가렴주구로부터 해방된 날을 맞이하였다. 동시에 유례없는 야만적 문화 억압 정책과 내선일체를 싸고도는 기만적인 문화정책으로부터도 조선의 문화와 예술가 문화종사자들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중세적인 캄캄한 문화의 몽매(蒙昧)를 뒤이어서 참아온 36년간의 지긋지긋한 탄압의 밑에서 그러나 문화의 싹은 자라났고 이룩되었고 사회의 동정(同情)과 혹은 냉시(冷視) 가운데서 희생적인 노력은 남모르게 지속되어 왔다. 혹독한 검열, 집회금지, 검속(檢束), 투옥, 사살 ― 세계 어떤 나라의 문화인들보다도 못지 않게 우리들은 이 부단(不斷)한 위협과 말발굽과 총칼 속에서 때로는 용감히 때로는 끈기 있게 투쟁을 계속하여 온 것이다.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드디어 조선 민족은 일본의 군국주의적 압제와 식민지적 가렴주구로부터 해방된 날을 맞이하였다. 동시에 유례없는 야만적 문화 억압 정책과 내선일체를 싸고도는 기만적인 문화정책으로부터도 조선의 문화와 예술가 문화종사자들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중세적인 캄캄한 문화의 몽매(蒙昧)를 뒤이어서 참아온 36년간의 지긋지긋한 탄압의 밑에서 그러나 문화의 싹은 자라났고 이룩되었고 사회의 동정(同情)과 혹은 냉시(冷視) 가운데서 희생적인 노력은 남모르게 지속되어 왔다. 혹독한 검열, 집회금지, 검속(檢束), 투옥, 사살 ― 세계 어떤 나라의 문화인들보다도 못지 않게 우리들은 이 부단(不斷)한 위협과 말발굽과 총칼 속에서 때로는 용감히 때로는 끈기 있게 투쟁을 계속하여 온 것이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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