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회의 절대 반대를 부르짖고 “피로써 항쟁하라.”“짚신 감발도 독립운동”“선혈 뿌려 반탁(反託)”등의 구호가 용감스럽게 되풀이되고 있는데 이러한 소위 ‘반탁운동자’들의 구호는 일개 남아(男兒)의 기개로서 본다면 장한 데도 있고 쾌(快)한 데도 없지 않다 하겠으나 삼상회의를 반대한 뒤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대안이 없는 이상 이러한 남아의 기개는 8·15 직전 패망(敗亡) 일본의 국수주의적 선동가와 그에 의하여 무사의 피를 끓게 한다고 하는 이른바 국민총동원 특공(特功) 정신 고취와 무모하고 당돌하기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