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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의 제태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33)

해방 후 문학 예술가들의 정치 관여가 문제가 되면서 이에 불만을 가졌다는 일부 청년 작가들이 ‘문학의 자율성’이라, ‘문학의 순수성’이라 하는 것을 그릇되게 잘못 인식하고 문학의 순수성의 옹호를 구호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였다는데 그들의 권위나 권력이나 금력이나 반동파에 궤배(跪拜)나 귀의에서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것이라면 정당할 뿐만 아니라 문학의 사도로서 옳은 전통 위에 선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왜 그런가하면 36년동안 왜정 기간중 명맥이나마 민족 문학의 길을 이어온 것은 이에 종사한 문학 예술가들의 권력과 금력에 대한 아첨의 거부의 정신이 가져온 덕분이 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문학 예술가들의 정치 관여가 문제가 되면서 이에 불만을 가졌다는 일부 청년 작가들이 ‘문학의 자율성’이라, ‘문학의 순수성’이라 하는 것을 그릇되게 잘못 인식하고 문학의 순수성의 옹호를 구호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였다는데 그들의 권위나 권력이나 금력이나 반동파에 궤배(跪拜)나 귀의에서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것이라면 정당할 뿐만 아니라 문학의 사도로서 옳은 전통 위에 선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왜 그런가하면 36년동안 왜정 기간중 명맥이나마 민족 문학의 길을 이어온 것은 이에 종사한 문학 예술가들의 권력과 금력에 대한 아첨의 거부의 정신이 가져온 덕분이 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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