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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조선여성기질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7)

처녀 명이 이번 봄에 89 전문 정도의 학교를 나와서, 사회로 가정으로 흩어졌다. 이밖에 동경이나 또는 서울 외의 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도 많을 것이요 중학교를 졸업한 채 가정으로 돌아온 분도 많을 것이므로 조선사회는 새로이 적지 않은 숫자의 고급 학문의 수업 여성을 맞이한 셈이다. 모두 20 전후의 젊은이들이매, 그들의 가슴속에는 제 각기 하나씩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품고 교문을 나섰을 것이다. 이미 이 해도 반이 기울어서 그들의 무지개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지 차츰 실험기에 들어가고 있다 할 수 있는데, 하나 하나 그것을 조사할 길이 없으니 상세한 바를 묘사할 수는 없다.
처녀 명이 이번 봄에 89 전문 정도의 학교를 나와서, 사회로 가정으로 흩어졌다. 이밖에 동경이나 또는 서울 외의 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도 많을 것이요 중학교를 졸업한 채 가정으로 돌아온 분도 많을 것이므로 조선사회는 새로이 적지 않은 숫자의 고급 학문의 수업 여성을 맞이한 셈이다.
모두 20 전후의 젊은이들이매, 그들의 가슴속에는 제 각기 하나씩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품고 교문을 나섰을 것이다. 이미 이 해도 반이 기울어서 그들의 무지개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지 차츰 실험기에 들어가고 있다 할 수 있는데, 하나 하나 그것을 조사할 길이 없으니 상세한 바를 묘사할 수는 없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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