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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의 가을의 회상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6)

지금으로부터 만4년 전이다. 이 해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혼란스럽고 또 이른바 액운이 함께 몰려든 해였다. 위선 정월 들어서 선처(先妻)가 아이를 낳고 9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평양서 하던 장사니 살림이니 한 걸, 전부 헤쳐버리고 성천(成川)에 와 있었고, 6월과 10월에 양차(兩次)나 카프사건으로 전주를 다녀왔고, 어린아이들은 양처(兩處)에서 연달아 홍역과 이질을 앓고도 분경치듯 하던 해이다.
지금으로부터 만4년 전이다. 이 해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혼란스럽고 또 이른바 액운이 함께 몰려든 해였다. 위선 정월 들어서 선처(先妻)가 아이를 낳고 9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평양서 하던 장사니 살림이니 한 걸, 전부 헤쳐버리고 성천(成川)에 와 있었고, 6월과 10월에 양차(兩次)나 카프사건으로 전주를 다녀왔고, 어린아이들은 양처(兩處)에서 연달아 홍역과 이질을 앓고도 분경치듯 하던 해이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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