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에 술 먹을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이 길한 일인지 흉한 일인지 또는 앞으로 한 해의 운이 활짝 트일 징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되 이 즈음 날로 장이 약해 가는 것 같고 이인 탓인지 숙취가 자심해서 통음한 뒷날 일, 양일간은 아무 일도 손에 대지 못하는 나로서는 위선 반가우면서도 은근히 켕기고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원체 의지가 박약한 나인지라 위장이 약해지면 종차 위궤양이든가 위하수증(胃下垂症)이든가 하다 못해 소화불량이나 만성 장가답아증(腸加答兒症)이라도 얻을 것을 겁내 하면서도 더구나 내가 지은 소설의 주인공 한 분은 이 위궤양 때문에 마약 중독자로까지 전락되어 작자인 내가 의술을 넘어서... ...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