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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쇄기소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07)

오전 열한 시 이십 분 자동차로 성천을 떠나기로 정하고 먼 곳에 전화를 걸었다. 친구나 친척집에도 하지만, 또 장소를 옮길 때마다 꼭 알려야 하는 곳도 있다. 마지막으로 같이 양덕까지 안내해 주기로 된 세무서의 K씨에게 전화를 걸고, 들추지 않는 좋은 자리를 하나 잡아 가지고, 내 집 앞에까지 와서 자동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하여 놓았다. 이 즈음 시골 다니는 자동차들은 무시로 세우지 않기로 되었다고 한다. 가솔린 경제로 일정한 처소 이외에선 정차 안 한다고 하나, 상당한 상거가 있는 내 집에서 그 곳까지 짐을 들고 가기가 대단하므로 미리 부탁해 두는 것이다. 성천서 양덕까지 가는 데는 두 길이 있다.
오전 열한 시 이십 분 자동차로 성천을 떠나기로 정하고 먼 곳에 전화를 걸었다. 친구나 친척집에도 하지만, 또 장소를 옮길 때마다 꼭 알려야 하는 곳도 있다.
마지막으로 같이 양덕까지 안내해 주기로 된 세무서의 K씨에게 전화를 걸고, 들추지 않는 좋은 자리를 하나 잡아 가지고, 내 집 앞에까지 와서 자동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하여 놓았다. 이 즈음 시골 다니는 자동차들은 무시로 세우지 않기로 되었다고 한다. 가솔린 경제로 일정한 처소 이외에선 정차 안 한다고 하나, 상당한 상거가 있는 내 집에서 그 곳까지 짐을 들고 가기가 대단하므로 미리 부탁해 두는 것이다.
성천서 양덕까지 가는 데는 두 길이 있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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