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 소유가 없다. 소유가 있다면 오직 고통 그것뿐이다. 고통의 인생도 죽기 전에는 이제나 나을까 저제나 나을까 하는 미망(微望)이 있으므로 미신이란 동무가 따라 다닌다. 나도 고통의 인생이다. 그래서 미신을 동무하였다. 남이야 나더러 완고라든지 비과학적이라 하든지 나는 이 동무를 버릴 수 없다. 이 동무가 왕왕 고통을 위안하여 주는 까닭이다. 그런데 신년이 왔다. 무진(戊辰)(1928년)이라 이름하는 신년이 왔다. 무엇으로 신년을 맞이할까. 나에게는 떡국도 없다. 딱총도 없다. 무엇으로 신년을 맞이할까? 미신의 동무야! 입 벌려라, 비결가(秘訣家)의 예언으로나 신년 무진을 맞이하자.
신채호는 젊은 시절 애국 계몽 운동가로서 주로 언론 저술 활동에 종사했고, 일제하에서는 러시아, 만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가로서 활약했다. 또한 사학자로서 한평생 ‘민족’과 ‘역사’를 화두로 당시 국정과 일본의 불의를 통렬히 비판하며 조선 민중의 혼을 깨우는 데 앞장섰다. 그는 만주와 시베리아의 수많은 유적지들을 직접 돌아다니고 수많은 사료들을 접하면서 우리 고대사(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처참해서 눈물을 뿌릴 것”이라고 통탄했다. 그가 민족 독립과 민중 해방을 위한 방편으로 아나키스트 운동에 투신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에 있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엇갈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