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편에도 하나 있고 오른편에도 하나 있어서 가로 놓이고 세로 선 것을 나의 이목 이라 하고 ‘ ’ , 위에도 둘이 있고 아래도 둘이 있어서 앞으로 드리운 것을 나의 ‘수족’이라 하며, 벼룩이나 이만 물어도 가려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나의 ‘피부’라 하며, 회충만 동하여도 아픔을 참지 못하는 것을 나의 ‘장부’라 하며, 8만4천의 검은 뿌리를 나의 ‘모발’이라 하며, 1분 동안에 몇 십 번씩 호흡하는 것을 나의 ‘성식(聲息)’이라 하며, 총총한 들 가운데 무덤에 까마귀와 까치가 파먹을 것을 ‘해골’이라 하며, 개미와 파리가 빨아먹을 것을 나의 ‘혈육’이라 하여, 이 이목과 수족과 피부와 장부와 모발과 성식과 해골과 혈육을 합하여 나의 ‘신체’라 하고, 이 신체를 가리켜 ‘나’라 하나니, 오호라! 내가 과연 이같이 희미하며 이 같이 작은가.
신채호는 젊은 시절 애국 계몽 운동가로서 주로 언론 저술 활동에 종사했고, 일제하에서는 러시아, 만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가로서 활약했다. 또한 사학자로서 한평생 ‘민족’과 ‘역사’를 화두로 당시 국정과 일본의 불의를 통렬히 비판하며 조선 민중의 혼을 깨우는 데 앞장섰다. 그는 만주와 시베리아의 수많은 유적지들을 직접 돌아다니고 수많은 사료들을 접하면서 우리 고대사(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처참해서 눈물을 뿌릴 것”이라고 통탄했다. 그가 민족 독립과 민중 해방을 위한 방편으로 아나키스트 운동에 투신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에 있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엇갈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