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의 상고사(上古史)를 읽을 때에 따라서 생기는 문제가, 제(1)은 언제부터 전설 시대를 지나 기록이 있었던가 하며, 제(2)는 기록이 있었다면 무슨 문자로 되었던가?라.
어떤 이들은 수두(蘇塗[소도])시대에 우리 글이 있었다 하나, 이는 아직 일종의 의문뿐이요, 아무 증거가 없으니, 그 유무를 억단(臆斷)할 수 없거니와 사책(史册)에 보인 바로서 말하자면, 우리의 쓰는 문자의 변천을 3시기에 나눌 수 있으니, 제1기의 이두문, 제2기의 구결문, 제3기의 언문이라.
신채호는 젊은 시절 애국 계몽 운동가로서 주로 언론 저술 활동에 종사했고, 일제하에서는 러시아, 만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가로서 활약했다. 또한 사학자로서 한평생 ‘민족’과 ‘역사’를 화두로 당시 국정과 일본의 불의를 통렬히 비판하며 조선 민중의 혼을 깨우는 데 앞장섰다. 그는 만주와 시베리아의 수많은 유적지들을 직접 돌아다니고 수많은 사료들을 접하면서 우리 고대사(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처참해서 눈물을 뿌릴 것”이라고 통탄했다. 그가 민족 독립과 민중 해방을 위한 방편으로 아나키스트 운동에 투신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에 있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엇갈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