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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가의 아들 (한국문학전집: 심훈 18)

봉환에게서도 기다란 답장이 왔다 지나치게 애통하는끝에 몸을 하리지 않도록 하라는것과 장모상사에 나가지못하니 반자(半子)의 도리가 아니라는것과 겨울방학에는 반듯이 귀 가하야 반가히 만나겠다고 간곡히 위로하는 말을 늘어 놓았 다. 인숙은 남편의 편지를 아침 저녁으로 끄내보며적지아니 위안을 받었다. 학교에 가면 상학시간에도 칠판의 백묵 글 시가 남편의 편지로 보일때까지 있었다. 그뒤에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편지 내왕이 있었고 봉환의 편지 서두에는 반듯이 『나의 사랑하는 』『직여성에게』라고 씨웠다. (직녀처럼 정말 일년에 한번씩밖에 만나지 못하겠되면 어 쩌누) 하면서도 인숙은 『직여성? 직여성?』 하고 남편이 지어준 저의 별명을 몇번이나 입속으로 되풀 이 해보기도 하였다. 그날그날 학교공부에나 ..
봉환에게서도 기다란 답장이 왔다 지나치게 애통하는끝에 몸을 하리지 않도록 하라는것과 장모상사에 나가지못하니 반자(半子)의 도리가 아니라는것과 겨울방학에는 반듯이 귀 가하야 반가히 만나겠다고 간곡히 위로하는 말을 늘어 놓았 다. 인숙은 남편의 편지를 아침 저녁으로 끄내보며적지아니 위안을 받었다. 학교에 가면 상학시간에도 칠판의 백묵 글 시가 남편의 편지로 보일때까지 있었다. 그뒤에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편지 내왕이 있었고 봉환의 편지 서두에는 반듯이

『나의 사랑하는 』『직여성에게』라고 씨웠다.

(직녀처럼 정말 일년에 한번씩밖에 만나지 못하겠되면 어 쩌누) 하면서도 인숙은

『직여성? 직여성?』

하고 남편이 지어준 저의 별명을 몇번이나 입속으로 되풀 이 해보기도 하였다. 그날그날 학교공부에나 착심을해서 모 든 설음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쓰다가도 깊이 곰겨서 음혈이 된 종기가 공기가 조금 습하기만 하여도 은근히 쑤시고 제 리드키 어머니생각이 문뜩나기만하면 책을 보다가도 얼빠진 사람처럼 한눈을 팔고 앉었기가 일수였다. 그럴때마다 인숙 은 남편을 생각하고 정이 뚝뚝 덧는듯한 편지사연을 법당노 인 념불하듯 속으로 외면은 행결 마음이 가러앉었다. 봉환 의 편지는 고통이 한참 고비에 올을때에 진통제(鎭痛劑)주사 한대를 맞는것만치니 인숙의정신상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다. <상록수>는 그의 대표작이다.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 역을 대역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으며,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이듬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연재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했으며, 6개월 후에 돌아와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해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자 이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으며, 1936년 〈상록수〉를 직접 각색·감독해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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