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의 달은 기우러 별만 총총한 밤이었다. 금강석을 부수 고 빠어서 가루를 만들어 끼언진듯 하늘바다는 완통 별투성 이다. 그 별들은 서로 눈을 깜작이며 깊은밤 우주의 신비를 속산이는듯 인숙은 그윽한 나무그놀에 몸을 숨기고 서서 그 찬란한 별 나라를 우러러 보았다.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다울까) 하고 서늘한 밤바람을 마시며 가벼운 탄식을 뿜었다.
인숙이는 이집에 들어온뒤에 오늘 저녁처럼 하늘을 조용히 우러러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싀집에 오자마자 퀴퀴한 냄 새가 배인 병실로 응달진 방구석에만 가처서 그늘진 그날그 날을 보내지 않었든가. 인숙은 과천집 생각이 불현듯이 났 다. 달밝은 여름밤 안 마루에 걸터앉어서 당음을 외든 생각 이 났다. 달빛을 밟으며 뒷짐을 지고 안마당을 거니시든 아 버지 생각이 났다. 지금 바로 눈앞으로 왔다갔다 하시는듯,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려서 눈을 감고 천천히 머리를 쳐 들었다. 동시에 외로운 감정이 인숙의 몸을 갈안개처럼 휘 감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다. <상록수>는 그의 대표작이다.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 역을 대역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으며,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이듬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연재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했으며, 6개월 후에 돌아와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해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자 이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으며, 1936년 〈상록수〉를 직접 각색·감독해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