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0 0 0 1 0 7년전 0

각시노름: 직녀성 상권 1부 (한국문학전집: 심훈 09)

갑오(甲午)년 이후 이땅을 뒤덮는 풍운이 점점 험악해 가는 것을 보자 불원간 세상이 바뀌일 것을 짐작한 인숙이 아버 지 이한림(李翰林)은 선영(先塋)이 있는 과천(果川) 땅으로 낙향을 하였다. 그러나 과연 세상이 바뀐 뒤로는 그곳에서 촌보도 음겨 놓지 않었다. 세상을 론튼 친구까지 끓어지고 내였다. 과천땅은 은둔한 지사가 풍월로 벗을 삼을만치 산천이 명 미한 고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우 한적하고 아직도 고풍이 남어있었다. 그곳 백성은 양반 상 인을 분간할뿐 아니라 볏백이나 하는 전장이 있었기 때문에 과천으로 나려가 여생을 보낼 결심을 한것이었다. 한림은 천생으로 서화의 특재가 있고 소시부터 음률에까지 출중하야 그중에도 거문고는 명수였다. 그러나 대(代)를 물려가며 어루만지든 거문고 복판을 ..
갑오(甲午)년 이후 이땅을 뒤덮는 풍운이 점점 험악해 가는 것을 보자 불원간 세상이 바뀌일 것을 짐작한 인숙이 아버 지 이한림(李翰林)은 선영(先塋)이 있는 과천(果川) 땅으로 낙향을 하였다. 그러나 과연 세상이 바뀐 뒤로는 그곳에서 촌보도 음겨 놓지 않었다. 세상을 론튼 친구까지 끓어지고 내였다.

과천땅은 은둔한 지사가 풍월로 벗을 삼을만치 산천이 명 미한 고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우 한적하고 아직도 고풍이 남어있었다. 그곳 백성은 양반 상 인을 분간할뿐 아니라 볏백이나 하는 전장이 있었기 때문에 과천으로 나려가 여생을 보낼 결심을 한것이었다.

한림은 천생으로 서화의 특재가 있고 소시부터 음률에까지 출중하야 그중에도 거문고는 명수였다.

그러나 대(代)를 물려가며 어루만지든 거문고 복판을 주먹 으로 깨트리고 손때묻은 통소를 무릎으로 꺾어 버렸다. 그 후로는 오직 아침 저녁 필묵으로 벗을 삼어 하로 몇장의 종 이를 물드리는 것으로 무료한 세월을 보냈다.

가선대부(嘉善大夫) 하나에 일금 얼마요 능참봉(能慘奉)한 자리에 얼마니 하야 위조 지페같은 첩지 한장에 명정거리를 작만하든 판묵이었만 이한림은 그 진흙속에서 일즉암치 발 을 빼었든것이다. 자기 한몸이나 깨끗이 지조를 직히다가 선조의 발치에 욕된 몸이 파묻치리라 하였다.

한림은 누구에게 대한 충성의 표적과 같이 머리를 깎지않 고 관을 썼다. 외아들은 경직(敬稙)이는 학교공부를 시키기 는 커녕 상투를 틀린뒤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이며 좀이 썰어 가는 켸켸묵은 책이 길로 싸인 자근 사랑 한구석에다 무릎 을 꿀려 두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다. <상록수>는 그의 대표작이다.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 역을 대역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으며,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이듬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연재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했으며, 6개월 후에 돌아와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해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자 이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으며, 1936년 〈상록수〉를 직접 각색·감독해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net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