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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계의 동향 (한국문학전집: 김동인 16)

나는 그 새 십수 년간을 비평에 붓하지 않았다. 때때로 그 경향이며 동태에 대하여는 붓을 잡아 본 일이 없다. 왜?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었다. 사람― 더구나 혈기에 뛰노는 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엄정한 解剖批評[해부비평]이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기 때문에…. 주관에 지배받기 쉬운 청년기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指導[지도]비평이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지도비평이 아닌 한 개의 感想[감상]비평이라는 것은 그것을 창작이라는 의미에서는 가치를 용인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도비평이라는 의미 아래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새 십수 년간을 비평에 붓하지 않았다.
때때로 그 경향이며 동태에 대하여는 붓을 잡아 본 일이 없다.
왜?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었다. 사람― 더구나 혈기에 뛰노는 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엄정한 解剖批評[해부비평]이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기 때문에….
주관에 지배받기 쉬운 청년기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指導[지도]비평이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지도비평이 아닌 한 개의 感想[감상]비평이라는 것은 그것을 창작이라는 의미에서는 가치를 용인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도비평이라는 의미 아래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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