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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원자에게 주는 당부 (한국문학전집: 김동인 15)

톨스토이가 法學[법학]을 전공하다가 중도 퇴학하였다는 것은 後進[후진]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말을 지금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장래 문학자가 되려는 욕심을 품고도 畫學校[화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그나마 중도에 퇴학하여 버린 사람이다. 하기야 小說家[소설가]가 되려는 데는 천분이라는 것이 으뜸이다. 다른 것은 버금가는 것이다. 小說作法[소설작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없고, 설사 가르친다 할지라도 그것을 배웠노라고 마치 木工科[목공과] 출신이 책상을 만들 듯 「규법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가 法學[법학]을 전공하다가 중도 퇴학하였다는 것은 後進[후진]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말을 지금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장래 문학자가 되려는 욕심을 품고도 畫學校[화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그나마 중도에 퇴학하여 버린 사람이다. 하기야 小說家[소설가]가 되려는 데는 천분이라는 것이 으뜸이다. 다른 것은 버금가는 것이다. 小說作法[소설작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없고, 설사 가르친다 할지라도 그것을 배웠노라고 마치 木工科[목공과] 출신이 책상을 만들 듯 「규법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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