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번 준 편지는 받아 읽었소. 허나 워낙 붓 들기를 싫어하는 나요. 더구나 답서 같은 것은 염직해서는 아니하는 괴별한 버릇이 있는지라 이때까지 한 장의 글월을 아끼었소만 그렇다고 결코 군을 잊은 것은 아니었소. 고향의 그 달을 생각하였고 또한 군의 얼굴을 머리에 그려보았소. 그러니 이 붓을 들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소 그려.
빠르오. 군과 내가 두견산에 올라 멀리 불타산을 바라보며 문담(文談)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되었소 그려. 그 동안 군은 몇 번이나 두견산에 올라 그 달을 바라보았소? 군! 나는 이 붓으로 일년 전 그때를 그려 보려 하오.
강경애는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궁핍한 가정환경에서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월사금을 낼 돈이 없어 돈을 훔치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다녔던 보통학교 때의 생활은 그런 그녀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어린시절 궁핍했던 삶은 강경애가 가난한 대중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1920년대의 문단은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립을 목표로 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1930년대의 문단은 작가들에게 대중을 선동하는 무기로서 △대공장 파업 △소작쟁의 △동맹 결성 등의 제제를 갖는 문학작품을 창작할 것을 요구했다. 강경애의 작품 역시 시대적 현상과 맞물려 당시의 투쟁경향이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