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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 봄을 맞는 우리집 창문 (강경애 08)

여기는 아직도 백설(白雪)이 분분(粉粉)하여 봄의 기분이란 용이히 맛볼 수가 없다. 그러나 모질게 몰아치는 그 바람에는 어지럽게 떨어지는 그 눈송이에도 여인의 바쁜 숨결 같은 것을 내 볼 위에 흐뭇이 느끼게 됨은 봄이 오는 자취가 아닐까. 나는 바느질을 하다 말고 멍하니 유리창문을 바라본다. 오늘 저 유리문은 햇빛을 고이 받아 환히 틔었다. 언제나 저 문엔 누가 그리는 사람도 없는데 갖가지로 그림이 아로새겨진다. 때로는 제법 어떤 화가의 손으로 정성스레 그려진 듯이 산이 솟아 있고 물이 흐르는 것이요, 혹은 망망(茫茫)한 바다에 흰 돗대 오뚝 솟아 초생달 같이 까부라져 있다. 하더니 오늘은 아무것도 그려 있지 않고 파란 하늘을 한 가슴 가득히 안고 있다. 우리 고향 뒷뜰에 풀쿠리 속에 숨어 ..
여기는 아직도 백설(白雪)이 분분(粉粉)하여 봄의 기분이란 용이히 맛볼 수가 없다. 그러나 모질게 몰아치는 그 바람에는 어지럽게 떨어지는 그 눈송이에도 여인의 바쁜 숨결 같은 것을 내 볼 위에 흐뭇이 느끼게 됨은 봄이 오는 자취가 아닐까.

나는 바느질을 하다 말고 멍하니 유리창문을 바라본다. 오늘 저 유리문은 햇빛을 고이 받아 환히 틔었다. 언제나 저 문엔 누가 그리는 사람도 없는데 갖가지로 그림이 아로새겨진다.

때로는 제법 어떤 화가의 손으로 정성스레 그려진 듯이 산이 솟아 있고 물이 흐르는 것이요, 혹은 망망(茫茫)한 바다에 흰 돗대 오뚝 솟아 초생달 같이 까부라져 있다.

하더니 오늘은 아무것도 그려 있지 않고 파란 하늘을 한 가슴 가득히 안고 있다. 우리 고향 뒷뜰에 풀쿠리 속에 숨어 있는 박우물같이 맑고 그렇게 하늘을 안고 있다. 앞집 뜰에 서 있는 포플러 나무가 우리 뜰의 것같이 가깝게 보이고 앞집 지붕에 녹다 남은 눈떨기는 가을의 목화송이 같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강경애는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궁핍한 가정환경에서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월사금을 낼 돈이 없어 돈을 훔치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다녔던 보통학교 때의 생활은 그런 그녀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어린시절 궁핍했던 삶은 강경애가 가난한 대중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1920년대의 문단은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립을 목표로 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1930년대의 문단은 작가들에게 대중을 선동하는 무기로서 △대공장 파업 △소작쟁의 △동맹 결성 등의 제제를 갖는 문학작품을 창작할 것을 요구했다. 강경애의 작품 역시 시대적 현상과 맞물려 당시의 투쟁경향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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