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이라면 조선·만주·러시아의 국경이니 만큼 거기에 대한 역사나 재미있는 전설 같은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소양이 없는 나로서는 극히 난처한 일이다. 더욱 두만강이라면 우리로서는 예찬보다는 원한이 많을 것이다. 좌우간 예찬이 될지 원한이 될지 생각나는 대로 붓을 옮겨보자.
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흐르는 일천오백여 리나 되는 장강이다. 두만강수의 분량은 조선에서 흐르는 물의 분량보다도 만주에서 흐르는 분량이 더 많다. 간도 용정촌으로 흐르는 해란강이며 국자가의 연길강, 백초구의 백초구강, 훈춘의 훈춘강 등이 고려령(高麗嶺)을 넘어 두만강에서 합류된다. 그리고 두만강이란 이름도 만주어에서 나온 이름이니 즉 도문색금(圖門索禽)이란 만주어에서 색금을 떼고 도문만을 붙여 두만이라 하였다.
강경애는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궁핍한 가정환경에서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월사금을 낼 돈이 없어 돈을 훔치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다녔던 보통학교 때의 생활은 그런 그녀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어린시절 궁핍했던 삶은 강경애가 가난한 대중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1920년대의 문단은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립을 목표로 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1930년대의 문단은 작가들에게 대중을 선동하는 무기로서 △대공장 파업 △소작쟁의 △동맹 결성 등의 제제를 갖는 문학작품을 창작할 것을 요구했다. 강경애의 작품 역시 시대적 현상과 맞물려 당시의 투쟁경향이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