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인가 솔을 좋아한다. 아마 썩 어려서부터인가 짐작된다. 봄만 되면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것은 내가 여섯 살인가 되어 어머니와 같이 뒷산 솔밭에 올라 누렇게 황금빛 나는 솔가래기를 긁던 것이다. 때인즉 봄이었던가 싶으다. 온 산에 송림이 울창하였고 흐뭇한 냄새를 피우는 솔가래기가 발이 빠질 지경쯤 푹 쌓여 있었다. 솔은 전년겨울 난 잎을 이 봄에 죄다 떨구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를 여읜 우리 모녀는 어느 산골에 사는 고모를 찾아갔고 고모네 집 옆방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그만큼 우리는 곤궁히 지내므로 해서 하루의 두 끼니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였던가 싶다.
강경애는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궁핍한 가정환경에서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월사금을 낼 돈이 없어 돈을 훔치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다녔던 보통학교 때의 생활은 그런 그녀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어린시절 궁핍했던 삶은 강경애가 가난한 대중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1920년대의 문단은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립을 목표로 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1930년대의 문단은 작가들에게 대중을 선동하는 무기로서 △대공장 파업 △소작쟁의 △동맹 결성 등의 제제를 갖는 문학작품을 창작할 것을 요구했다. 강경애의 작품 역시 시대적 현상과 맞물려 당시의 투쟁경향이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