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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기억 (한국문학전집: 현진건 20)

전호 에는 너무도 (前號) 적게 썼다. 여러분 글동무를 뵈올 적마다 나는 질책의 시선을 느꼈다. 그럴 족족 내호(來號)에는 많이 쓰리라, 흠씬 쓰리라고 남 몰래 결심하였다. 그러나 미래는 ‘빈손의 환영’이었다. 모든 것을 약속하고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모 것도 없었다. 무엇을 쓸까? 편집회의는 열렸다. 나는 소설과 기행문을 맡게 되었다 소설은 어찌하든지 지을 수 있는 듯싶었다. 두말 아니하고 쾌락(快諾)하였지만, 기행문은 무에라고 끄적거릴 가망조차 없었다. “어데 가본 데가 있어야 쓰지.”하고 탄식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해운대 갔다 오지 않았소? 그것 쓰구려.” 그 잘 웃는 도향(稻香) 군이 그 때는 웬일인지 아주 엄연히 얼굴을 바루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나의 요리조리 핑계하는 것이 미웠음이리라. 전번..
전호 에는 너무도 (前號) 적게 썼다. 여러분 글동무를 뵈올 적마다 나는 질책의 시선을 느꼈다. 그럴 족족 내호(來號)에는 많이 쓰리라, 흠씬 쓰리라고 남 몰래 결심하였다. 그러나 미래는 ‘빈손의 환영’이었다. 모든 것을 약속하고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모 것도 없었다.
무엇을 쓸까? 편집회의는 열렸다. 나는 소설과 기행문을 맡게 되었다 소설은 어찌하든지 지을 수 있는 듯싶었다. 두말 아니하고 쾌락(快諾)하였지만, 기행문은 무에라고 끄적거릴 가망조차 없었다. “어데 가본 데가 있어야 쓰지.”하고 탄식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해운대 갔다 오지 않았소? 그것 쓰구려.” 그 잘 웃는 도향(稻香) 군이 그 때는 웬일인지 아주 엄연히 얼굴을 바루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나의 요리조리 핑계하는 것이 미웠음이리라. 전번에 미흡히 여긴 것이 부지불식간에 발로되었음이리라. 그 푸른 서슬에 나는 유유승명(唯唯承命) 하였건만 암만해도 써질 것 같지 않았다. 과연 그의 말마따나 해운대에 갔다 온 일은 있다. 잘잘못은 그만두고, 붓을 놀린다는 사람치고야 기행문 하나 없지 못할 만한 여행이었다.
현진건(玄鎭健,1900- 1943)

대구 출생. 호는 빙허(憑虛). 1918년 일본 동경 성성중학(成城中學) 중퇴. 1918년 중국 상해의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 입학했다가 그 이듬해 귀국.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특히 <동아일보> 재직시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선수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1 년간 복역함. 이 사건 이후 서울 자하문 밖에서 양계를 하다가 실패하고, 폭음으로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처녀작은 1920년 <개벽> 12월호에 발표된 <희생화>이고 주요 대표작으로는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1924), <불>(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2) 등과 함께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이 있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우리 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 전기의 작품 세계는 1920년대 우리나라 사회와 기본적 사회 단위인 가정 속에서 인간 관계를 다루면서 강한 현실 인식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고, 그 때의 제재는 주로 모순과 사회 부조리에 밀착했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기에 와서는 그 이전 단편에서 보였던 강한 현실 인식에서 탈피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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