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評)을 써 보기는 이번이 난생처음이다. 합평회에 몇 번 참예를 해서 말로는 더러 이러니 저러니 해 보았지만 글로 쓰자니 매우 벅찬 노릇이다 본래 평(評)을 그리 즐기지 않는 나이라 이번에도 될 수만 있으면 피하려고 하였으되 방(方)․최(崔) 양군이 그예 내 처녀평을 끌어 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듯이 성화를 피우기 때문에 총총히 이 붓을 든 것이다.
서두는 그만 두고 9월호 잡지에 완결된 작품만 골라서 몇 마디씩 적어보자.『개벽(開闢)』이 정간(停刊)을 당하고 『생장(生長)』또한 나오지 않았으니 문예 실은 잡지라야 『조선문단(朝鮮文壇)』과 『여명(黎明)』이 있을 따름이다. 아모리 쓸쓸한 가을 바람이 부는 이 때지만 우리 문단은 때맞추어 너무나 쓸쓸하다.
현진건(玄鎭健,1900- 1943)
대구 출생. 호는 빙허(憑虛). 1918년 일본 동경 성성중학(成城中學) 중퇴. 1918년 중국 상해의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 입학했다가 그 이듬해 귀국.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특히 <동아일보> 재직시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선수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1 년간 복역함. 이 사건 이후 서울 자하문 밖에서 양계를 하다가 실패하고, 폭음으로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처녀작은 1920년 <개벽> 12월호에 발표된 <희생화>이고 주요 대표작으로는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1924), <불>(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2) 등과 함께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이 있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우리 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 전기의 작품 세계는 1920년대 우리나라 사회와 기본적 사회 단위인 가정 속에서 인간 관계를 다루면서 강한 현실 인식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고, 그 때의 제재는 주로 모순과 사회 부조리에 밀착했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기에 와서는 그 이전 단편에서 보였던 강한 현실 인식에서 탈피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