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현진건이 아르치바셰프의 <행복>으로 작가로서 첫길을 열었다는 엄연한 사실, 지금 읽더라도 파격적이라거나 일본의 풍조에 민감했다는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1920년대의 끝물인 1929년에 최서해가 같은 작품에 다시 손댄 바 있다는 사실도 그럴 법한 일이고요. 그런가 하면 한참 뒤인 1950년대 중반에야 처음 번역된 《사닌》이 각종 세계 문학 전집에 으레 포함되곤 한 내력도 흥미롭긴 하지만 이해하기 곤란한 일은 아닙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상하이에서 독일어를 공부한 현진건이 러시아 소설을 첫손에 꼽았다는 사실입니다. 현진건이 번역한 열 편의 단편 중 러시아 소설은 모두 네 편...... 그중에는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막심 고리키 소설도 하나 들어 있습니다. 그 밖에 프랑스 소설이 세 편, 독일 소설 두 편, 폴란드 소설 한 편 순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장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창간되자마자 내분에 휩싸인 데에다가 정간까지 당하고 만 <조선일보>가 속간호의 첫 연재소설로 내민 것이 바로 현진건이 번역한 투르게네프의 대표작 《첫사랑》입니다. 현진건이 바로 뒤이어 연재한 소설도 투르게네프의 《루딘》이었고요. 얼마 뒤 현진건이 <시대일보>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역시 투르게네프의 《첫날밤》부터 들고 나왔습니다.
기실 식민지 시기에 가장 많이 번역된 문학 작품은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이며, 단일 작가로는 투르게네프가 단연 으뜸을 차지합니다. 예컨대 1920년대 상반기에 신문에 연재되거나 단행본으로 출판된 투르게네프의 장편만 여남은 편이 확인됩니다. 일찌거니 벽초 홍명희가 번역하기 시작한 산문시라든가 안서 김억과 횡보 염상섭이 앞 다퉈 번역한 <고독>이나 <밀회> 같은 단편 소설은 빼더라도 말입니다.
말하자면 현진건은 그중에서도 선편을 쥔 번역가라 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현진건을 일컬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러시아 문학 전문 번역가라 불러도 좋을 만하지요.
현진건(玄鎭健,1900- 1943)
대구 출생. 호는 빙허(憑虛). 1918년 일본 동경 성성중학(成城中學) 중퇴. 1918년 중국 상해의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 입학했다가 그 이듬해 귀국.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특히 <동아일보> 재직시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선수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1 년간 복역함. 이 사건 이후 서울 자하문 밖에서 양계를 하다가 실패하고, 폭음으로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처녀작은 1920년 <개벽> 12월호에 발표된 <희생화>이고 주요 대표작으로는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1924), <불>(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2) 등과 함께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이 있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우리 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 전기의 작품 세계는 1920년대 우리나라 사회와 기본적 사회 단위인 가정 속에서 인간 관계를 다루면서 강한 현실 인식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고, 그 때의 제재는 주로 모순과 사회 부조리에 밀착했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기에 와서는 그 이전 단편에서 보였던 강한 현실 인식에서 탈피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