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먹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고 먹는 것이라(Man lebt nicht um zu essen, sondern ißt um zu leben.) 함은 독일의 俚諺[1]이라던가. 더군다나 우리 동양으로 말하면, 어느것은 口腹小人이라니, 여지없이 모욕하고 멸시하고 눈썹을 찡그리고 침을 배앝았다.
사람이 살기란 먹기 위함인가 아닌가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으리라. 과연 먹자고 산다는 것은 만물의 영장 되는 사람에게 최대 모욕이리라. 다른 동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남들을 상에도 창피한 일이리라.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시방 효연소연히 전세계를 울리고 움직이고 뒤흔드는 문제가 무엇인가. 분명히 빵의 분배 문제라 한다. 먹자는 시비요, 다툼이요, 싸움이다. 가장 위대한 두뇌와 가장 신랄한 수완들이 이로써 골몰하고 이로써 헐떡이고 이로써 분주하다. “나에게 빵을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죽음을 주소서”하는 부르짖음이 九泉에 사무친다.
“사람은 먹자고 사느냐, 살자고 먹느냐?”
현진건(玄鎭健,1900- 1943)
대구 출생. 호는 빙허(憑虛). 1918년 일본 동경 성성중학(成城中學) 중퇴. 1918년 중국 상해의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 입학했다가 그 이듬해 귀국.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특히 <동아일보> 재직시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선수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1 년간 복역함. 이 사건 이후 서울 자하문 밖에서 양계를 하다가 실패하고, 폭음으로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처녀작은 1920년 <개벽> 12월호에 발표된 <희생화>이고 주요 대표작으로는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1924), <불>(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2) 등과 함께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이 있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우리 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 전기의 작품 세계는 1920년대 우리나라 사회와 기본적 사회 단위인 가정 속에서 인간 관계를 다루면서 강한 현실 인식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고, 그 때의 제재는 주로 모순과 사회 부조리에 밀착했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기에 와서는 그 이전 단편에서 보였던 강한 현실 인식에서 탈피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