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순사가 동양의 대현이라는 맹자님과 어떤 혈통의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또 우리 나라 명재상 맹고불이 맹정승과는 제 몇대손이나 되는지, 혹은 아무것도 안되는지, 그런 것은 상고하여 보지 못하였다.
“칼자루 십 년에, 집안 여편네 유똥치마 하나 못해 준 주변에, 헐 말이 무슨 헐 말이우?”
증왕의 순사 아낙에 세 가지 특색이 있으니, 가로되 언변 좋은 것, 가로되 건방진 것, 가로되 옷 호사 잘하는 것이라고. 실로 이 계집의 허영으로 인하여, 순사들이 얼마나 더 악착히 ‘순사질’을 하였음인고. 맹순사의 아낙 서분이도 미상불 언변 좋고, 똑똑하고(즉 객관적으로 바꾸어 치면 건방지고) 하기로는 좀처럼 남에게 질 생각이 없으나, 오직 옷 호사 한가지만은 어엿이 고개를 들 자신이 와락 없었다. 천하에 순사의 아낙 되어 옷 호사를 못하다니, 유감이 깊을지매. 자못 동정스런 노릇이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소설가. 전북 옥구 출생. 호는 백릉(白菱). 서울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수학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개벽>사의 기자를 역임했다. 그는 1924년 12월호 <조선문단>에 단편 “세길로”로 추천을 받고 등단. 그러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에 접어 들어 <조선지광>, <조광>, <신동아> 등에 단편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1932년부터는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작품 경향으로 한때 그는 동반자 작가로 불린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동반자적 입장에서 창작하였으나 후기에는 풍자적이고 토속적인 면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소설에 “탁류”(1937), “태평천하”(1937), 그리고 단편 소설에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193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