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아침 호텔에서 역까지 나가는 길이 몹시 차서 나는 차 속에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연일 비 기운도 있기는 있었으나 별안간 기온이 내려 냉랭한 기운이 한꺼번에 엄습해 온 것이었다. 일주일이 못 가 외투를 입게 되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남행차를 탄 것이었으나 향관에 돌아오니 아직도 날이 더워 낮 동안은 여름 옷으로도 땀이 나는 지경이다. 북위 44도의 하얼빈과 이곳과는 남북의 상거가 머니 절기의 차이인들 심하지 않으랴마는 지금쯤은 그 북방의 변도(邊都)가 완전히 가을철을 잡아들어 얼마나 풍치가 변해졌을까를 상상하면 지난 짧은 여행의 기억이 한층 그리운 것으로 여겨진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옷치장도 바뀌어졌을 것이요, 여인들의 걸음걸이도 달라졌을 것이며, 나뭇잎들은 또한 얼마나 곱게 물들었을까.
이효석은 경성 제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경성(鏡城) 농업학교 교사, 평양 대동강 공업전문학교와 숭실전문 교수를 역임한 당대 최고의 인텔리였다. 그는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 7월호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함으로써 동반작가로 문단에 데뷔하여, 유진오와 함께 동반작가로 활동하였으나 1933년 순수문학 주도의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돈(豚)>(1933) 발표 후 순수문학으로 전향하였다. 그는 1936년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秀作)이라 할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 후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미 병들다>, 장편 <화분> 등을 계속 발표하여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 경향으로 주목을 받았다. 수필, 희곡 등 22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뇌막염으로 사망했는데 김동인, 현진건과 함께 3대 단편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