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원래가 자연의 배경 속에 숨어드는 것이어서 녹음이 없고 밀화 부리의 노래가 없다면 사실 어떻게 해서 밀려드는 5월의 숨결인들 느낄 수 있으랴.
거리는 5월의 거리나 3월의 거리나 매일반, 백화점의 의상부가 아무리 빛 엷은 시절의 옷감을 내걸고 자랑을 한대야 거리를 왕래하는 여인들의 맵시란 거개가 휘줄그레하고 시원치 못하다. 미색(美色)의 곳으로 이름만이 높을 뿐 이렇게 졸색이 흔한 곳도 처음 본다. 몇 해를 있어도 수려한 미인을 보았던지 못 보았던지 기억에 없다. 결국 아름다운 것이란 극히 귀한 것인 듯하며 그러기에 같이 있는 모양이다.
이효석은 경성 제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경성(鏡城) 농업학교 교사, 평양 대동강 공업전문학교와 숭실전문 교수를 역임한 당대 최고의 인텔리였다. 그는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 7월호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함으로써 동반작가로 문단에 데뷔하여, 유진오와 함께 동반작가로 활동하였으나 1933년 순수문학 주도의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돈(豚)>(1933) 발표 후 순수문학으로 전향하였다. 그는 1936년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秀作)이라 할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 후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미 병들다>, 장편 <화분> 등을 계속 발표하여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 경향으로 주목을 받았다. 수필, 희곡 등 22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뇌막염으로 사망했는데 김동인, 현진건과 함께 3대 단편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