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릉에서 농사를 짓는다 하여 동대문 밖 우시장에서 소 한 마리를 산 것이 지나간 삼월이었다 육만원이라면 . 나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큰돈이다. 더구나 내 농토 전체의 값과 얼마 틀리지 않는 큰돈이다.
소를 사리 말리 하기에 우리 내외는 두 달이나 의논도 하고 다투기도 하였다. 십만원어치도 못 되는 농토를 갈겠다고 육만원짜리 소를 산다는 것이 아이보다 배꼽이 큰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군도 없는 우리 농사에 소까지 없고는 품을 얻을 수가 없는 것하고, 또 소를 안 먹이고는 거름을 받을 길이 없다는 이유로 마침내 소를 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광수(李光洙: 1892-1950?)
평북 정주 출생. 호는 춘원(春園).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수학 중 동경 2·8 독립 선언을 주도. <조선 청년 독립단 선언서> 기초. 상해 <독립신문> 편집 주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됨. <조선 문인 협회> 회장 역임. 1909년 <백금학보(白金學報)에 <애(愛)>를 발표한 이후 1917년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으며 신문학 초창기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광수는 최남선과 함께 언문일치의 신문학 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근대 문학의 여명을 이룩한 공헌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초기 한국 문단의 성립을 주도했다는 혁혁한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말기에 변절하여 친일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대중적인 성향을 띄면서도 계몽주의적·이상주의적 경향을 지니고 있는데 지나친 계몽 사상으로 인해 설교적인 요소가 많다.
주요 작품으로는 <어린 희생>, <무정>,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개척자> <무명> <마의태자>, <단종애사>, <흙>, <유정>,<사랑>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