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地平線[지평선]에」에 대하여 어느 시대의 일이냐, 어느 땅의 일이냐고 묻는 이가 있읍니다. 거기 대하여 한 마디 말하고자 합니다. 그 시대며 땅은 모두 당신네들의 상상에 일임합니다. 천 년 전, 오 백 년전, 백 년 전― 아무 때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조선, 만주, 몽고, 서장 혹은 인도, 아무 땅의 일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작자부터가 시대며 지방에 구애되지 않고 쓰느니만치, 당신네들도 또한, 그 시대며 땅에 대하여 자유로 상상할 권리가 있읍니다. 풍속이며 제도이며 인정이며도 역시 작자가 자유로이 상상의 날개를 펼치느니만치, 혹은 상상도 못할 기이한 풍속이 나올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며, 또한 현대가 아니면 있지 못할 제도이며 인정도 가입될는지도 알 수 없읍니다. 순전한 창작― 그리고 또한 순전한 한 개의 이야기― 그런지라, 거기는 작자의 마음에만 있으면 어떠한 소위‘시대 착오’의 사건이 혹은 가입되고 혹은 진행되는지 이것은 작자조차 짐작도 할수 없는 바외다. 그만한 예비 지식을 가지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