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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문단의 독재성 (한국문학전집 560)

재작년 8월 하순부터 젊은 소설가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며 글이 흔히 돌았다. 즉 ‘새 세상이 되었으니 문학― 더우기 소설도 일제시대의 때를 벗고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야겠다.’ 고. 비평가들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발명해 가지고 진보적 민주주의 아래서 새 조선의 문학의 걸어나갈 길의 정의를 많이 운운하였다. 그러나 그 이론들은 구체적으로 뜻을 알아 내기 힘든 것으로서, 모두가 추상적이요, 요령부득의 것이었다. 직접 소설을 붓[筆]하는 것으로 천직을 삼는 나 같은 사람도 뜻을 요해하기 힘들었다.
재작년 8월 하순부터 젊은 소설가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며 글이 흔히 돌았다. 즉 ‘새 세상이 되었으니 문학― 더우기 소설도 일제시대의 때를 벗고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야겠다.’
고. 비평가들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발명해 가지고 진보적 민주주의 아래서 새 조선의 문학의 걸어나갈 길의 정의를 많이 운운하였다.
그러나 그 이론들은 구체적으로 뜻을 알아 내기 힘든 것으로서, 모두가 추상적이요, 요령부득의 것이었다.
직접 소설을 붓[筆]하는 것으로 천직을 삼는 나 같은 사람도 뜻을 요해하기 힘들었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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