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0 0 13 1 0 8년전 0

작품과 제재의 문제 (한국문학전집 554)

붓을 잡고 원고지를 대할 때마다 제재로 한참씩 머리를 쓴다. 글을 씀에 제재로 열심한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별로이 신기한 말이 아니다. 여기 지금 말하는 바 제재의 고심이라 하는 것은 이전에 보통 말하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무엇을 쓰랴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쓰랴 하는 것보다도 그 쓴 것의 미치는 영향과 결과를 생각하는 데 고심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론 나 개인의 심경의 변화와 성격이며 취미의 변화에서 생겨난 변태적 결실이겠지만 현재의 내게는 소설의 제재가 극히 국한되었다. 세상 보통의 '소설'이라는 것은 쓸 흥미를 전혀 잃어버렸다. 천 편을 써도 그것이요, 만편을 써도 그것으로서 그것을 쓸 흥미도 잃어버렸고 쓸 가치도 인정되지 않는다.
붓을 잡고 원고지를 대할 때마다 제재로 한참씩 머리를 쓴다.
글을 씀에 제재로 열심한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별로이 신기한 말이 아니다. 여기 지금 말하는 바 제재의 고심이라 하는 것은 이전에 보통 말하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무엇을 쓰랴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쓰랴 하는 것보다도 그 쓴 것의 미치는 영향과 결과를 생각하는 데 고심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론 나 개인의 심경의 변화와 성격이며 취미의 변화에서 생겨난 변태적 결실이겠지만 현재의 내게는 소설의 제재가 극히 국한되었다. 세상 보통의 '소설'이라는 것은 쓸 흥미를 전혀 잃어버렸다. 천 편을 써도 그것이요, 만편을 써도 그것으로서 그것을 쓸 흥미도 잃어버렸고 쓸 가치도 인정되지 않는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net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