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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시인평 (한국문학전집 548)

오래간만에 만나는 여편네에게 향하여 “전보다 이뻐졌소이다.” 하는 편이 좋은지 “전만 못하게 되었소이다.” 하는 편이 좋은지 그것은 모르겠읍니다. 언젠가 어떤 중년 여자에게 전보다 썩 아름다와졌다고 인사를 드렸다가(간접으로) 욕먹은 일이 있읍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전의 얼굴은 괜찮았지만 지금 그 얼굴을 가지고 천하를 활보를 하오?’고도 또한 못할 일로서 여자에게 인사할 때는 시대의 전후라는 것은 입밖에 내지 않아얄 일이요 그것을 입밖에 내는 것은 큰 모험이라 할 수가 있읍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여편네에게 향하여
“전보다 이뻐졌소이다.”
하는 편이 좋은지
“전만 못하게 되었소이다.”
하는 편이 좋은지 그것은 모르겠읍니다. 언젠가 어떤 중년 여자에게 전보다 썩 아름다와졌다고 인사를 드렸다가(간접으로) 욕먹은 일이 있읍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전의 얼굴은 괜찮았지만 지금 그 얼굴을 가지고 천하를 활보를 하오?’고도 또한 못할 일로서 여자에게 인사할 때는 시대의 전후라는 것은 입밖에 내지 않아얄 일이요 그것을 입밖에 내는 것은 큰 모험이라 할 수가 있읍니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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