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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한국문학전집 529)

피고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것은 복심법원이었다. 사건은 살인이었다. 어떤 사람이 교외 외딴곳에서 참살을 당하였다. 흉기는 날카로운 칼로서, 그 칼은 범행의 현장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그 피해자는 교외에 사는 사람으로서, 짐작컨대 밤늦게 돌아가다가 그런 변을 당한 듯하였다. 피해자에게서는 시계와 돈지갑이 없어졌다. 반지도 끼었던 자리는 있는데, 현품은 없었다. 그 피의자로 잡힌 것이 S였다. S의 집에서 피해자의 돈지갑과 시계와 반지가 발견되었다. 더구나 강도 전과, 협박 전과 등등 몇 가지의 전과는 그의 범행을 이면으로 증명하는 증거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피고는 제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공소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피고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것은 복심법원이었다. 사건은 살인이었다.
어떤 사람이 교외 외딴곳에서 참살을 당하였다. 흉기는 날카로운 칼로서, 그 칼은 범행의 현장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그 피해자는 교외에 사는 사람으로서, 짐작컨대 밤늦게 돌아가다가 그런 변을 당한 듯하였다. 피해자에게서는 시계와 돈지갑이 없어졌다. 반지도 끼었던 자리는 있는데, 현품은 없었다.
그 피의자로 잡힌 것이 S였다. S의 집에서 피해자의 돈지갑과 시계와 반지가 발견되었다. 더구나 강도 전과, 협박 전과 등등 몇 가지의 전과는 그의 범행을 이면으로 증명하는 증거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피고는 제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공소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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