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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 (한국문학전집 522)

미증유의 중대 방송 ‘ ’ ─ 정오에 있으리라는 이 중대 방송이 논제의 중심이 되었다. ○○중공업회사 평양 공장이었다. “아마 소련에 대한 선전포고겠지.” 공무과장이 다 알고 있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선전포고쯤이야 우리나라는 10년에 한 번씩 으레 했고 3년 전에도 미영에 대해서 선전을 포고했으니 ‘미증유’라는…… 새삼스레 미증유 운운의 어마어마한 형용사까지 붙여서 예고까지 할 게야 없겠지.” 영업과장이 공무과장의 말에 반대했다. “그럼 무에란 말이야?” “글쎄…….” 과장급의 사원들이 둘러앉아서 정오에 있을 중대 방송에 대하여 이런 말들을 주고받을 때에, 한편 귀퉁이에 앉아 있던 급사가 혼잣말로 작은 소리로, “무조건 항복.” 하고는 자기의 말소리가 비교적 컸던 데 스스로 놀라서 목을..
미증유의 중대 방송 ‘ ’ ─ 정오에 있으리라는 이 중대 방송이 논제의 중심이 되었다.
○○중공업회사 평양 공장이었다.
“아마 소련에 대한 선전포고겠지.”
공무과장이 다 알고 있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선전포고쯤이야 우리나라는 10년에 한 번씩 으레 했고 3년 전에도 미영에 대해서 선전을 포고했으니 ‘미증유’라는…… 새삼스레 미증유 운운의 어마어마한 형용사까지 붙여서 예고까지 할 게야 없겠지.” 영업과장이 공무과장의 말에 반대했다.
“그럼 무에란 말이야?”
“글쎄…….”
과장급의 사원들이 둘러앉아서 정오에 있을 중대 방송에 대하여 이런 말들을 주고받을 때에, 한편 귀퉁이에 앉아 있던 급사가 혼잣말로 작은 소리로, “무조건 항복.”
하고는 자기의 말소리가 비교적 컸던 데 스스로 놀라서 목을 어깨 속에 오므렸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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